[사진] 가을의 문턱에서 본 마지막 여름꽃

등록 2006.08.21 17:17수정 2006.08.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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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지막 여름을 햇볕을 그리워하는 꼬리조팝나무

마지막 여름을 햇볕을 그리워하는 꼬리조팝나무 ⓒ 정길현

휴일 아침 산에 오를까? 가랑비 때문에 망설여진다. 이 정도 비면 사진 촬영에는 문제가 없겠지, 내친김에 가방을 둘러메고 산에 올랐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천보산맥 끝자락에 연결되어 있는 왕방산 입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수풀 사이로 꼬리조팝나무가 보인다.

a 이제 한창 개화하기 시작한 물봉선(물봉선화꽃)

이제 한창 개화하기 시작한 물봉선(물봉선화꽃) ⓒ 정길현

꼬리조팝나무는(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관목) 진주화 또는 수선국이라고도 불린다. 왕방산은 872년(신라 헌강왕 3) 도선국사가 이 산에 머물고 있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금 오르자 멀리 계곡습지에 며느리 밥풀 꽃 같은 것이 보였다. 며느리 밥풀 꽃 보다 크기가 커 보여 가보니 '물봉선' 이었다.

물봉선은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수술은 5개이고 꽃밥은 합쳐진다.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에서 8~9월에 개화하며 꽃이 봉선화를 닮았고 물가에서 잘 자란다고 하여 물봉선화로 이름이 불려지게 된 꽃이다.

지금은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다음주면 자줏빛으로 활짝 개화하는 물봉선을 보게 될 것 같다. 가랑비에 속 옥 젖는다더니 정말 옷이 다 젖었다. 나무 위에서는 바람 불 때마다 물이 카메라 위로 떨어져 신경을 쓰이게 한다.

비닐에 한 겹 싸서 가방에 넣고 하산하려 하는데 본능적으로 산 위에 주홍색이 한눈에 들어왔고 나의 발길을 붙잡고 말았다. 저게 무얼까? 원추리꽃은 아닌 것 같아 발길을 돌려 문제의 주홍색꽃에 다가갔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서만 보던 '동자꽃' 이었다.


a 애기 동자승을 닮았다는 동자꽃

애기 동자승을 닮았다는 동자꽃 ⓒ 정길현

꽃잎, 꽃술, 꽃받침 등을 관찰해 메모하고 사진을 찍었다. 동자꽃은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6∼8월에 핀다. 주홍색으로 백색 또는 적백색의 무늬가 있고 줄기 끝과 잎 겨드랑이에서 낸 짧은 꽃자루 끝에 1송이씩 붙는다. 취산꽃차례(聚揀花序)를 이루어 핀다. 동자 꽃에 얽힌 전설이 있다.

a 애기 동자승이 죽어 꽃으로 태어났다는 동자꽃

애기 동자승이 죽어 꽃으로 태어났다는 동자꽃 ⓒ 정길현

깊은 산골짜기의 암자에 스님과 어린 동자승 둘이서 기거를 하였는데 겨울 채비를 하러 마을로 내려간 스님이 폭설로 쌓인 눈 때문에 산사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스님을 기다리던 어린 동자승은 눈 때문에 스님이 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매일 숲길 어귀에 나와 스님이 오시길 기다리다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쓰러졌다.


길이 뚫려 스님이 암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죽은 동자승의 시체만 있었다. 스님은 동자승이 죽은 자리에 시신을 묻어주고 명복을 빌었는데 이듬해 여름 동자승을 묻어준 자리에 주홍 색의 꽃이 피었다. 꽃은 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꽃을 '동자꽃'이라 불렀다.

a 새 색시처럼 수줍은듯 소박하게 피어있는 이질풀

새 색시처럼 수줍은듯 소박하게 피어있는 이질풀 ⓒ 정길현

동자꽃이 외로워서였을까, 우연히도 새색시꽃 '이질 풀'과 나팔꽃이 동자꽃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질풀을 '새색시'라고 부르는 것은 꽃말 때문이다. 새색시같이 항상 수줍은 듯 소박하게 피는 꽃이라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a 동자승의 죽음을 아는냥 눈물을 머금은 나팔꽃

동자승의 죽음을 아는냥 눈물을 머금은 나팔꽃 ⓒ 정길현

어린 동자꽃이 외롭지 않게 새색시 꽃이 나란히 피어있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려 내려오다가 이질풀 사이로 우뚝 솟은 '바디나물'을 보았다.

a 자주색 속살을 들어낸 바디나물

자주색 속살을 들어낸 바디나물 ⓒ 정길현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작년에도 촬영한 적이 있지만 오늘 여기서 본 바디나물이 훨씬 좋아보여 사진에 담았다. 산이나 들 습지에 잘 자라며 참 당귀와 같이 자주색 꽃을 피운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기타 꽃순이나 뿌리 등은 복용하면 독이 있어 유의하여야 하며, 간혹 당귀와 혼동 중독사고도 있다고 한다.

a 가을을 기다리며 한창 피어오르는 바디나물

가을을 기다리며 한창 피어오르는 바디나물 ⓒ 정길현

오늘 비로 인해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하산했는데 오후 들어 비도 그쳤다. 괜히 서둘러 하산 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렇지만 오늘 산행 나들이에서 동자꽃을 찾아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여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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