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법개혁, 법치주의 위협하는 암적 존재"

천기홍 변협회장, 로스쿨·배심제·고법 상고부·법조일원화 등 문제 지적

등록 2006.08.21 16:50수정 2006.08.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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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은 정치개혁이나 경제개혁 또는 사회개혁과는 달리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법치주의의 근본체제를 바꾸는 작업이므로 순수한 동기를 갖고 신중한 절차에 의해 시도돼야 한다. 왜냐하면, 사법개혁은 국민의 실생활에 직접적이고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잘못된 개혁을 다시 시정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용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천기홍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21일 개최된 제17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로스쿨(법학대학원) 도입 등 5개 주요 사법개혁 과제들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같이 주장했다.

"로스쿨로 변호사 수임료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선동"

a 기조연설을 하는 천기흥 변협회장

기조연설을 하는 천기흥 변협회장 ⓒ 신종철

천 회장은 먼저 로스쿨 도입 문제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사법개혁과제로 선정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로스쿨 도입인데 변협의 기본입장은 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천 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로스쿨은 세계에서 유일한 미국식 법률문화로서 미국에서조차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제도"라며 "우리에게는 고비용·저효율의 극심한 폐해만을 초래할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교육상업주의에 물든 일부 법학교수들과 국민을 위한 사법을 강조하면서 마치 자신들만이 국민인 양 행세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로스쿨 제도를 이용해 변호사 수를 대폭 증가시키면 사법제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천 회장은 "법조인 수를 대폭 증가시켜 경쟁을 강화하고 서열을 파괴함으로써 법조비리가 근절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논리의 비약"이라며 "법조 윤리의식의 저하, 유사 법조직역의 분쟁 등 또 다른 문제발생을 도외시한 단선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또 "로스쿨 도입으로 당장 국제경쟁력이 강화되고, 변호사 대량 생산으로 수임료를 낮출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가설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근거 없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덧붙여 천 회장은 "사법개혁은 목적이 순수하고 절차가 합법적이어야 하며, 개혁목적이 왜곡되거나 절차가 비합법적이라면 오히려 법률문화를 퇴보시키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 남게 된다"고 꼬집었다.


"상고사건 폭증은 대법원이 자초... 대법관 증원 통해 해결해야"

천 회장은 배심제와 참심제 같은 국민의 사법참여제도의 문제도 지적하며 "국민의 사법참여라는 명분으로 도입이 예정돼 있는 배심재판에 대해 다시 한 번 신중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심제는 헌법 규정과 명백히 배치되며, 국민의 법의식과도 조화되지 않아 배심제 법안은 위헌문제를 피하기 위해 배심원들의 평결이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국민의 사법참여제도는 이미 중요의미와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사법개혁의 홍보만 요란하고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와 관련, 천 회장은 먼저 "고법 상고부 설치 문제는 대법원과의 권한배분문제, 상고부의 위치와 상고부 판사의 자격문제 등도 있으나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재판이 결과적으로 4심제로 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대법관들의 사건처리 건수가 해마다 증가해 이제 한계를 초과하고 있다는 사정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지만, 많은 법조인은 상고사건 폭증 현상은 법률심인 대법원이 권한확대를 위해 스스로 사실관계에 관여함으로써 상고사건 증가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자초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 회장은 특히 "많은 법조인은 상고사건의 폭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할 것을 요망했음에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 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고법 상고부라는 특이한 제도를 창안해 편의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일원화'에 대해서도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천 회장은 "법조일원화는 법원의 관료화를 방지하고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재판에 수용하기 위해 일정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고, 그 비율을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것으로 크게 환영할만한 개혁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법조일원화 대상이 하급심 법관에 한정돼서는 안 되고, 고위법관에도 확대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대법관은 오히려 과거에는 재야에서 임용하는 사례가 많았음에도 5명이나 교체되는 이번 대법관인사에서 재야인사를 한 명도 기용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며, 법원의 편의만을 위한 형식적인 법조일원화로 사법개혁이 퇴보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천 회장은 "국선변호사제도를 대폭 확대하고 인신구속제도를 개선하는 등 올바른 개혁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조할 것"이라며 "그러나 신속처리절차나 공판중심주의 확대는 인권경시나 절차의 중복 등 또 다른 문제점을 파생할 수 있어 폐해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천 회장은 "사법개혁 작업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이라는 정치적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사법은 오히려 '헌법과 법률에 의한 사법'이어야 하며, 법치주의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사법의 정체성과 개혁의 정도를 모두 잃게 된다"며 "따라서 법치주의의 수호자인 변호사들은 사법개혁 과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잘못된 방향은 가차없이 비판하고 올바른 개혁에는 적극 협조함으로써 법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 옛날식 권위 버리고 현대적 변호사상 정립할 때 됐다"

한편 천기흥 변협회장은 "인권옹호와 정의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들은 법치주의와 함께 살며 법치주의와 운명을 함께 하는 영광의 직업인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반법치적 사고나 행동을 배격해야 하며, 반법치적 환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법조비리사건은 부끄럽고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천 회장은 "법원과 검찰도 자정노력을 다짐하고 있지만 변협도 변호사 등록심사를 보다 엄격히 하면서 변호사 비리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징계 내용을 일반에 공개하는 방법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이것은 대다수 선량한 변호사들의 권리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특단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천 회장은 "이제 변호사의 3대 악이라고 일컬어지는 ▲브로커 고용 ▲탈세 ▲전관예우의 악습으로부터 벗어나 옛날식 권위를 버리고 전문지식과 윤리의식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새로운 현대적 변호사상을 정립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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