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천만관객 시대'로 표현되는 지금, 영화계에 대한 관심은 배우를 넘어 감독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모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보다 '모 감독의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통할 정도로 관객의 관심은 영화의 겉포장에서 포장을 만든 주인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심의 급증과 달리 감독들을 보여주는 창구는 실망스럽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감독과의 인터뷰일 텐데 이것은 개봉되는 영화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영화 홍보를 위한 자리로 전락하고 만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까. 그 감독이 아니어도, 설사 스태프나 배우가 출연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많다. 인터뷰어나 매체 나름의 사정이 있더라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때, 지승호가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면 어떨까? <7인7색>, <마주치다 눈뜨다> 등에서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다운 실력을 보여준 지승호라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승호, 젊은 감독 군단을 만나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지승호는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등 7명의 영화감독를 만나고 있다.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을 뽑자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감독 군단이라는 것이다. 또한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정'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흥행참패'라는 경력이 있을지라도, 꺼지지 않는 에너지를 지녔다는 말이다.
마지막 공통점은 이런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이 잘 배웠다는 말까지 할 정도. 그런 만큼 이전에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김지운 감독이다.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을 선보였던 그는 인지도에 비해 알려진 것이 없어서 그런지 신비로운 인상으로 통한다. 하지만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다. 지승호가 이미지 속에 가려졌던 김지운 감독의 면모를 샅샅이 들춰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인간적인 면모를 수차례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이 맞나 싶게 만들 정도다. 장성일의 영화 관련 글은 죄다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고, 배우를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스케줄이 맞아야 되겠죠"라고 말하는 장난스러운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그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겪었던 굴곡 짙은 사연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긴다.
동시에 스크린쿼터와 관련된 당사자의 절박한 심정 또한 녹아들어 있다. 인터뷰의 끝에 이르면 '영화감독 김지운은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깊이가 놀랍다. 그러니 '열정'을 엿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독들의 다양한 면모 보여주는 지승호의 '인터뷰'
두 번째 인터뷰이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주먹이 운다> 등을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인데 인터뷰의 면모는 김지운 감독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의 것이 "그 영화는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해줬다면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는 "그 영화들을 만들었던 류승완은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해준다.
특히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그럴 텐데, 기존의 것이 '가난했지만 성공했다'는 방향으로 흘렀다면 이 책에서는 '가난했던 그것이 내게는 무엇이었는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 만큼 영화감독 류승완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로 부족함이 없다.
뒤이은 변영주 감독과의 인터뷰는 거침없는 게 특징이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가 아니었으면 볼 수 없는 '생각'과 '말'이 많다고 해야 할까? 인터뷰의 범위는 스크린쿼터와 민주노동당에 대한 생각부터 <낮은 목소리> <밀애> 등의 자신의 영화에 대한 것들까지 방대하게 다루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빼는 것'이 없다. 그런 만큼 변영주 감독의 뜨거운 속을 엿볼 수 있는 자리로 손색이 없다.
네 번째 만나는 이는 인터뷰이들 중에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법한 봉준호 감독이다. <괴물>의 흥행가도 때문에 그럴 텐데 정작 인터뷰 속에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보다는 이전 작품들과 영화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때문에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법도 한데, 다행스럽게도 그럴 일은 없다. <괴물>을 만드는 지점까지 걸어갔던 봉준호 감독의 면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만의 넘치는 에너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이미지' 넘어선 '진짜 인터뷰'를 만나다
그 외 <두사부일체>로 등장한 윤제균 감독,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 <간 큰 가족>의 조명남 감독과의 인터뷰도 색깔이 분명하다. 어디서나 들어본 것 같은 인터뷰가 아니라 이번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인터뷰라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인터뷰를 막론하고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선 '진짜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는 영화감독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의 열정 또한 뜨겁게 다가온다. 바로 지승호의 그것이다. <7인7색>을 '8인8색'으로 만들었던 그것, 흔하고 흔한 인터뷰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뜨거웠던 열정이 여기서도 유감없이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집요할 정도로 인터뷰이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친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도 그러냐"고 묻는 것이나, "어느 평론가는 이런 식으로 혹평을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는 것은 예사로 등장한다. 언젠가 했던 말들, 심지어 풍문까지도 묻고 있다.
굳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어도 인터뷰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 이것을 가능케 한 지승호의 열정을 엿보는 것도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그동안 감독들은 소리치고 싶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마주칠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들리는 소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의 열정까지 건드릴 정도니 오죽할까. 놓칠 수 없는 소리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승호 지음,
수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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