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그 내면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서평]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난 'scene' 인류 ...<감독, 열정을 말하다>

등록 2006.09.05 14:25수정 2006.09.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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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정을 말하다> 겉표지.
<감독, 열정을 말하다> 겉표지.수다
몇 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배우와 감독 등 상당수의 영화인들이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접하면서 '아니, 저 사람들의 지향이 저렇게 앞선 것이었나'하며 의아해 했었다. 영화인하면 먼저 '풍족'과 '화려'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영화인 중 극히 소수의 진보적인 사람들만이 간신히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것이고 나머지는 민주노동당보다는 그 정 반대편의 당(?)이 오히려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과거 배우나 탤런트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경우 백발백중 민주노동당과는 거리가 제일 '먼 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의외의 사실에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선택이 보기 좋았다.


지승호씨의 최근작 <감독, 열정을 말하다>(수다)에서 요즘 감독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위와 같은 나의 생각들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였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영화판은 그새 '물갈이'가 되어도 한참 되었을 뿐 더러 더 이상 낡은 관념과 사상으로는 숨쉬기도 곤란한 공간으로 변한 듯 했다.

많게는 천만 관객, 적게는 몇 십억 투자해서 정성을 들이면 적어도 200~300만명의 관객은 들 것이기에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구태의연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감독의 생각주머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일선인 듯 했다. 그 세계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새로워지지 않으면 한 작품의 실패로도 보따리 싸야 되는 냉혹한 세계였다.

감독, 그 마음 속이 궁금해

아무튼 이 살벌한 동네에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걸고 수백 만 잠재관객과의 소통을 생각하며 일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간난신고 끝에 한 작품씩 선보이며 살아가는 감독들의 내면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 책에 소개된 7명의 영화감독들은 저마다 아주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풀어놓았다. 감독들의 내적 편린이나 색깔, 성격, 취향을 모르고 영화를 보는 것은 혹 '감독 모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조용한 가족> <쓰리>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은 마치 외로운 남자의 대명사 같았다. 그는 "현재의 무의미한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서 영화를 하는 거고, 내가 살면서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좋아진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작품 하나 정도는 남겨야 되지 않을까"싶은 마음에 영화를 한다고.

"현장에서는 시쳇말로 그 시공을 장악하고, 관장하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오감이 다 열려져 있어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다 열어놓아야 합니다. 저쪽 구석에서 스태프들이 저를 욕하고 있는 분위기까지 감지하고 있어야 되고, '현장에서 공간의 기운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계속 조정해 줘야 되거든요…. 너무 무겁게 가져가지 말아야 되고 너무 풀어져서 산만하게 가지도 말아야 돼구요." -<본문 40쪽>


위는 김지운 감독의 변인데 아마 모든 감독들이 대부대를 이끌고 영화를 찍자면 늘 그런 머리에 쥐가 나는 상황의 연속일 것이다. 그렇게 긴장을 끌어안고 찍은 수많은 필름들을 다시 두 시간으로 압축하여 세상에 내 놓는다니 장인도 그만한 장인이 없다 싶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다섯 개의 시선> <주먹이 운다> <짝패>의 류승완 감독. <주먹이 운다>와 <짝패>는 류 감독의 작품인줄 알았지만 다른 것들은 제목만 기억할 뿐 그 감독을 몰랐는데 바로 류 감독 이었다니. 왜 그를 두고 액션, 액션 하나 했더니 실은 그의 영화인생이 모두 액션으로 채워져 있었다.

"제가 정말 열심히 살아서 세상에 있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 모습을 보고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그것도 의미 있는 인생이 되지 않나 싶어요"라는 그의 말은 지나친 겸손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 류승완 감독에게서는 시종 '따스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라고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온기를 충전 받고 있을 것이다.

일단, 영화 먼저 보고 씹으세요

그런가 하면, 10년이라는 청춘을 바치고 개인 돈 5억을 써가며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완성한 변영주 감독의 그 거침없는 직설적 화법과 생각들은 아주 속을 후련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도 보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극찬한 언론들에 감정이 많았다. 그의 10년 노고를 극찬하면서 교묘히 면피하려는 듯한 저의에 무척 화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얘기를 담은 그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은 극장 개봉 되었을 때 국내에서는 1만 명 정도의 관객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몇 년에 걸쳐 "150개 도시에서 상영되어 40~50만의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그가 그 후 <낮은 목소리>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밀애>를 후속작으로 내놓자 언론들은 변영주가 변했다며 하나같이 '씹'었는데, 변영주 감독은 오히려 그쪽이 '귀여'웠다고. 그 이유는 '욕을 해도 영화를 보고 욕'을 했으니까. "가장 절망할 때 희망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변영주 감독은 영화를 일러 '치유의 능력을 가지는 어떤 경험'이라고 하였다.

봉준호, 윤제균, 조명남, 장준환

이 외에도 <플란더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의 경우는 인터뷰가 가장 길었는데 그에게서는 뭐랄까 '철학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괴물>이 지금처럼 이름을 날리기 전 마무리 작업 과정에서 한 인터뷰이기에 <괴물>을 만들고 있던 제반 상황과 그의 내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작품 가지고 5년 동안 투자 받으려고 기다리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자신이 녹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조명남 감독은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간 큰 가족>으로 데뷔를 하였다. 그의 초인적 인내력에 박수를 보내며, 그 과정에서 얻었을 내공은 그의 차기작에 충분히 거름이 되고 있으리라.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낭만자객>의 윤 제균 감독은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감동'을 주고 '꿈과 희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단 한편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를 내 놓았다는데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마무리

지승호씨는 이번 인터뷰 집을 내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하였는데 그것은 인터뷰 당한 감독들의 얘기들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감독들은 그 어떤 걸림도 없이 자신들의 속내를 완전히 '경계'를 풀고 털어 놓았다. 고상하게 말을 돌린다거나, '이런 발언하면 모 언론에 밉보이지 않을까' 등의 계산이 전혀 깔리지 않은 '진실함'이 뚝뚝 묻어나는 인터뷰였다.

한편, 인터뷰에 참여한 감독들은 FTA에 대해서나, 독립, 저예산 영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스텝들의 처우 등에 대해서는 이견 없이 모두들 한마음이었다. 때문에 이 젊은 감독들의 마음이 제작자들에게 연결이 되고 일반 국민들에까지 전달이 되어 진정한 여론의 장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리고 여담으로, 여러 감독들이 친하게 지내는 감독의 이름을 묻자 '임필성'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되었는데, <남극 일기>를 만들었다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임필성 감독은 어떤 성향의 감독일까? 그것이 몹시 궁금하였다.(웃음) 변영주 감독 버전으로 말하자면 일단 영화먼저 보고 궁금해 하는 게 '예의'인가?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승호 지음,
수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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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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