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떨리는 그림책 읽기

엄마들, <빛그림 동화>를 위해 연습에 돌입하다

등록 2006.08.24 19:17수정 2006.08.2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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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서 도우미 모임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서 도우미 모임 ⓒ 이선미

8월 24일 목요일 오후 1시 반. 엄마들이 하나둘 도서관으로 몰려옵니다.


"아휴, 또 늦었네. 김은선씨는 안왔어요? 아까 나왔다고 아들이 그러던데?"

부랴부랴 이일남씨가 들어오고 나서,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아 공부할 태세를 만듭니다. 오늘은 바로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서 도우미 엄마들이 그림책 공부를 하는 날입니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속에 나온 그림책들을 돌아가면서 읽어보기도 하고 서로 생각들을 말하기도 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공부 뒤에는 엄마들의 아주 깊은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은 어린이도서관에 와서 도서대출과 반납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 해보자는 것이 바로 이 모임입니다. 그림책 공부를 하면서 좋은 그림책들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엄마들이 서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들의 목표는 10월부터 매주 한번 <빛그림 동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영화와 같이 빔 영상으로 크게 보고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식입니다.

지난 7월, 꾸러기 어린이도서관에서 개최한 <도서관 학교>를 거치면서 엄마들은 <빛그림 동화>에 도전했습니다. 저마다 읽을 책들을 한 손에 쥐고, '고도리' 순서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구연동화도 하고, 독서지도사 활동도 하는 황미령씨가 에즈라 키츠의 <피터의 의자>를 읽습니다. 피터의 목소리를 너무 생생하게 내는 바람에 다른 엄마들은 어느새 주눅이 들기 시작합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황미령씨도 처음 어른들 앞에서 그림책을 읽기가 쉽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리고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어 강영화씨가 쓰쓰이 요리코의 <우리 친구하자>를 읽습니다.

"이거 진짜 떨리네?"

<우리 친구하자>의 아름이가 말하는 폼이 다소 어색하기는 했지만 무사히 책읽기를 마쳤습니다.

"내가 원래는 상냥한 목소리인데, 이렇게 뭘 하면 건조한 목소리가 된다니까!"

강영화씨의 말에 다들 '와하하' 웃으며 넘어갑니다.

이어 김옥녀씨의 점잖은 목소리로 듣는 <누가 내머리에 똥쌌어?>, 김은선씨의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는 <내가 형이랑 닮았다고?>를 읽고 이어 이일남씨가 야시마타로의 <우산>을 읽었습니다. 강한 선이 돋보이는 야시마 타로의 <우산>을 보고 들으면서 다들 조용하게 그림책속으로 몰입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빗방울 소리. 이일남씨가 당황을 합니다.

"똑 또옥 똑 또옥 또로록 또로록 또로록 또로록 또옥 또옥…"

빗방울 소리를 읽는 것이 꽤 깁니다. 어색한 적막이 흐르면서 이일남씨의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진지한 책이 나 때문에 웃겨지네. 아휴."

간신히 다음 장을 넘겼는데, 이일남씨가 계속 웃음이 나와 책을 읽지 못합니다. 무사히 빗방울 소리가 넘어갔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이일남씨가 말합니다.

"사실은 이게, 뒤에 보면 빗방울 소리가 또 나와요. 아휴 어떻해!"

이일남씨의 난감한 말투에 다들 눈물이 쏙 빠지도록 같이 웃고 넘어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저 또한 책을 안 읽을 수 없어 한 책을 뽑아들었습니다. 선물 같은 책,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중요한 사실>.

그 책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예전에 너는 아기였고,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어린이고, 앞으로 더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건 틀림없어. 하지만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말과 함께 옆 페이지에 있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 그림을 보면서, 엄마들은 자기들도 한번씩 거울에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모두 한번씩 돌아가며 그림책을 읽어보고는 박수를 치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모임 이후에는 끝없는 수다가 펼쳐졌습니다. 커피 한잔에 시원한 도서관에서 격없이 엄마들과 떠는 수다는 참 맛있었습니다. 이런 모임이 앞으로도 많이 생겨, 엄마들 얼굴에도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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