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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이 여름도 긴 꼬리를 말아 들고 가을에 길을 내주겠지요. 어느덧 가을이 한 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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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스런 조롱박. ⓒ 김철호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사람이 힘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물주가 베푸신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이 가고 오는 것도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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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이른 허수아비. ⓒ 김철호
그러나 옛 사람들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숨겨진, 또 하나의 계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장하(長夏)'입니다. 가는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아직 남아 있는 긴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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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두어번 익은 고추를 속아냈을 고추밭. ⓒ 김철호
장하는 맑고 청명한 하늘에 뜨거운 햇살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시 사람들에게 그냥 지겨운 늦더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곡식을 기르는 농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고마운 또 하나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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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숙인 벼 이삭. ⓒ 김철호
장맛비와 후텁지근한 열기가 온갖 곡물의 자람을 부추깁니다. 튼튼한 줄기와 무성한 잎을 기릅니다. 저마다 제 생긴 대로의 모양을 나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장이 지나치면, 입과 줄기가 웃자라서 모양만 무성하고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웃자람을 막아주고 튼실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장하가 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의 뜨거운 햇살은, 봄여름 동안 쉼 없이 자라온 잎과 줄기에서 곡식이 패게 하고, 그 낱알을 여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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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를 기다리는 여름사과. ⓒ 김철호
그렇습니다.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가 그 생(生)의 목적이자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열매가 그 사람을 나타내고 그 사람을 증언합니다.
그러할 때 장하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할 장년의 때입니다. 꿈과 열정이 익어 갈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솔한 사랑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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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까리 열매의 여름나기. ⓒ 김철호
고난과 절망의 일상 속에서도 쉼 없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생명의 소리, 사랑의 외침입니다.
다른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지체라도 아끼지 않으려는 사람. 벗을 위하여 자신의 장기라도 떼어줄 수 있는 "금란지교". 그러므로 사랑이 인생의 장하입니다.
사랑은 인생의 으뜸가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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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어가는 조이삭. ⓒ 김철호
그래서 사랑은 새로운 열매를 위한 유일하고 소중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각 사람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조물주가 주신 사람됨의 천부적 성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엔조이>에도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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