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베토벤과 마에스트로 정명훈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며 정화한다

등록 2006.08.26 19:37수정 2006.08.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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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1770. 12. 17 ~ 1827. 3. 26)은 우리의 영원한 영웅이다. 어린 시절 음악 시간부터 우리는 베토벤이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음악을 성취한 음악인이자 악성이라고 배웠다.

베토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이름인가? 내게는 괴테, 칸트와 더불어 이른바 '독일 정신'의 한 맥을 이루는 높은 산이었다. 중학교 초년생일 때 베토벤 전기를 읽으며 시골길과 논길을 걷던 난 흡사 유명한 작곡가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팔을 휘저으며 지휘하기도 하고, 피아노 건반을 취한 듯이 연주하는 시늉을 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녘 하늘에서 노을이 질 때 동요를 부르며 내닫던 어린 날이 아직도 선연하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한 첫 번째 음악 감상곡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었다. 낯설고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꼈던 그날 반 친구들은 거의 잤다. 그러나 난 한참 후 다시 그 음악을 듣고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팔을 들썩인 기억이 새롭다.

베토벤의 음악은 보통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1786~1803)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시기로 교향곡 1, 2번이 이 시기 작품이다. 제2기(1804~1816)는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로 교향곡 3번에서 8번까지다. 제3기(1817~1827)는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을 창작한 시기다. 교향곡 9번 등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후 감각을 초월한 작품을 남겼으며, 형식과 내용에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한다.

이달 초, 장맛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베토벤 교향곡 6번과 7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일부 강변도로가 물에 잠기고 도처에서 길이 막혔다. 거북이걸음으로 '예술의 전당'에 갔다. 지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물의 진지한 낙하가 대견하고 대단해 보인다. 겨우 시간에 맞춰 연주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등장해 청중에게 인사했다. 정명훈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모두 연주하겠다는 열정으로 서울시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6번과 7번을 연주하기로 한 이날 정명훈은 대가의 풍모를 드러내는 것 같은 희끗희끗한 머리로 무대에 섰다. 정명훈의 눈빛은 형형했고, 손과 어깨와 머릿결은 리듬에 맞춰 격정적으로 흔들렸다.

교향곡 6번은 베토벤이 피곤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전원에 도착했을 때 느낌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정겹게 바람이 불고, 새가 노래하고, 아름다운 들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느낌이다.


베토벤은 괴테를 만난 후 '불멸의 여인'에게 편지를 쓴 1812년에 교향곡 7번을 작곡했다. 빈에서 베토벤 자신이 지휘한 초연부터 호평을 얻었고 2악장은 자주 앙코르를 요청받았다고 한다. 2악장은 이 곡의 대중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대목으로 한번만 들어도 귀에 곧 익숙해진다. 리스트와 바그너는 베토벤 특유의 위트가 넘치는 3악장 및 광란이 느껴지는 1악장과 4악장을 마법의 음악으로 평가했다.

1악장은 가장조의 목가풍 서주로 시작한다. 3분 남짓 서주가 연주된 뒤 꾀꼬리 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경쾌한 리듬을 지닌 1악장이 이어진다. 2악장은 이 곡에서 가장 느린 악장으로 가단조의 멜랑콜리한 주제가 제시된다. 3악장은 바장조의 스케르초이고, 4악장은 가장 빠르고 힘이 넘치는 악장으로, '술의 바 바커스의 향연'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연주자들의 빠른 손놀림과 몸놀림이 힘찬 음향을 쏟아냈다. 기쁨과 희열과 용솟음의 환희가 그득하며, 다시 낮은 저음과 굵은 선율의 어두움이 섞였다.

가요나 가곡과 달리 기악이나 교향곡은 작곡자가 남긴 선율을 기본으로 하고, 지휘자와 연주자의 기량과 개인적 성향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향을 만들어낸다. 듣는 자는 연주 음악을 자기 배경과 여건과 음악적 기호에 따라 나름대로 해석할 것이다. 같은 음악도 듣는 지의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감동의 깊이도 다를 것이다. 로맹 롤랑이 베토벤 전기에서 이 곡을 일컬어 '리듬의 대향연'이라 하였듯이, 이 곡은 각 악장마다 독특하고 인상적인 리듬이 악장 전체를 지배한다.

장마철에 만난 베토벤은 영혼의 깊은 곳을 만져준다.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며 정화한다. 기쁨은 물론 슬픔과 회한과 쓸쓸함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스스로 우러난 자연스런 즐거움이다.

음악에는 기쁨을 늘리고 아픔을 줄이는 놀라운 치유와 자정능력이 있다. 아니다. 음악은 스스로 아름다움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산맥 같이, 바다 같이.

공자가 소(韶)란 음악을 듣고 감명 받아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허사는 아닐 것이다. 내리는 장맛비처럼 베토벤의 깊고 그윽한 음악에 흠뻑 젖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차가 막히긴 했지만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아름다운 한여름 밤 꿈이었다.

전원

다음은 '전원' 교향곡을 감상한 느낌이다.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청아한 시골의 전원을 나는 거닐고 있네

하늘은 높아 흰 구름이 정겨이 떠 있고
수국, 로즈마리, 라벤다 향이 그득한
전원을 노닐고 있네

삶이 음악처럼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말은
거짓되고 비현실이기도 하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가볍고 정겨운 음향에
저 더블베이스와 첼로의 묵중하고 어둠 같은 것,
슬픔과 내리 누르는 기다림 같은 것이

어우러지고 겹치고 혼효되는
오케스트라의 들숨과 날숨이 어우러지네

베토벤 교향곡 7번

다음은 베토벤 교향곡 7번을 감상한 느낌이다.

열중한 눈
흔들리며 솟구치는 몸
노래, 선율

흔들리는 머릿결
목관악기의 섬세하고 가녀린

왼쪽의 따스한 햇살과 아름다운 음악과 새소리와 향기와
오른쪽의 혼돈과 흑암과 뇌성과 천둥과

속으로 관통하는 빛, 새소리
광명과 환희의 영원과 찰나의

암벽의 소리, 깊은 사막의 소리
웅혼한 오랜 침묵 속의 두터운 노래

춤추는 지휘자 마에스트로
떨리는 손과 손가락과 지휘봉

머리, 발, 허리,
바이올린과 첼로의 대결과 조화

음과 양
조화와 혼돈
대양과 사막
산맥과 해연

서로 다른 불협화음이 섞이고 뒤채이며
조화되며
마침내 아름다운
오! 그대 한 마리 갈매기
그의 날쌘 비상, 밀려오는 파도, 멈춰 선 암벽
조화되어 춤추는
어우러져 노래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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