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녀 임부, 상담은 '유용' 지원은 '미흡'

청소녀 임신 보호 시스템 현장

등록 2006.08.28 12:36수정 2006.08.2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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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임신한 청소녀가 진료를 받기 위해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소개해준 산부인과에 들어서고 있다.

임신한 청소녀가 진료를 받기 위해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소개해준 산부인과에 들어서고 있다. ⓒ 우먼타임스

"어떤 도움이 필요하세요?"
"저기, 저는 고2 학생인데요. 임신을 했어요. 6개월."
"음 그렇군요. 많이 놀랐겠어요. 어떻게 할지 아이 아빠와 상의해 봤나요?"

한국청소년상담원. 국가청소년위원회 산하기관인 이곳은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정부기관이다. 기자가 임신한 청소녀를 가장해 인터넷 채팅 상담을 시도했다. 임신했다고 밝히자 우선 심리적 측면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다. 주로 아이를 가진 후의 기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병원에는 다녀왔나요?"
"네, 그냥 검사만 받고 왔어요. 세 달 전쯤이요."
"그럼 지금 6개월이라는 것은 본인이 계산한 것인가요?"
"네. 배가 점점 불러와요. 무서워요."
"걱정이 많이 되겠어요. 아이를 낳아서 본인이 키우고 싶은가요?"
"아니요. 시설 같은 데 보낼 수 없을까 해서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이를 시설에 보내고 싶다고 하자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상담사는 말했다. 부모님과 상의했는지 물으면서, 처음에는 혼을 내더라도 결국 걱정해주고 감싸주실 것이니 부모님께 꼭 말씀드리라고 거듭 당부했다.

상담자를 안심시킨 후 출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상담이 이루어졌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물론 아이를 낳아서 기를 경우 이용할 수 있는 모자가정지원 정책에 관해서 알려주었다. 기관에서는 출산 전 요양과 출산 후 입양까지 모두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혼모를 대상으로 하는 애란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서울 신촌에 위치하고 있고 연락처는 02-393-4725번이에요. 미리 전화를 해보는 것이 좋아요. 출산도 도와주고 원할 경우 입양문제까지 다 상담해주니까 꼭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먼저 홈페이지에 한번 들러볼래요? 주소는 www.aeran won.org예요."

애란원은 한국장로교복지재단에서 미혼모를 위해 숙식 보호, 상담, 교육 등을 제공하는 생활시설이다. 상담사는 이곳을 소개해주면서 하루라도 빨리 연락하여 상담해보라고 권유했다. 더 늦어지면 아이와 본인 모두에게 위험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기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고 말하자, 상담원은 "혼자 아이를 키울 경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다"면서 "애란원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언제든지 전화 1388로 연락이 가능하다"며 도움을 주었다.

1388은 한국청소년상담원의 긴급전화로,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이 밖에 서울 YMCA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성교육 상담 전문기관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와 같은 곳도 이용할 수 있다.


"앞으로는 성관계를 갖더라도 꼭 피임을 하구요. 예쁜 아기 낳은 뒤 꼭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면 해요. 꼭이요. 힘내요!" 마지막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며 상담을 마쳤다.

이처럼 정부의 청소년 보호 시스템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청소년상담원의 상담은 체계적이고 유용했다. 실질적인 정보는 물론 상담 과정에서 학생이 임신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여학생만이 문제를 떠안지 않도록 배려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임신중절을 원할 경우 산부인과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으면 임신한 청소녀들은 안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홍보 부족으로 청소년들이 이런 상담소를 이용하는 비율은 높지 않은 편. 또한 원할 때 바로 상담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채팅상담의 경우 상담방이 한 개밖에 개설되어 있지 않아 15분 정도 기다려야 했고, 전화상담은 세 번 시도 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긴급전화 1388은 공중전화에서 긴급전화 수신자 부담이 되지 않아 청소년들이 긴급할 때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한편, 청소녀 임신 보호 시스템은 상담뿐 아니라 정책 측면의 문제도 있다. 본지가 상담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에게 지원되는 양육비는 자녀가 만 6세가 될 때까지 월 5만원에 불과해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 상담실은 있으나 마나 "소문 날라" 쉬쉬…전문상담가 부족

학교 상담실은 학생들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일차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교 상담실은 학생들이 임신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상담하기에는 비밀 보장에 대한 우려가 커 학교 내 전문 외부 상담사 배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서울 및 경기도내 10개 중고등학교 상담부서에 전화 문의한 결과 9개 학교는 공식적인 임신 관련 상담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고, 사례가 있는 학교에서도 비밀 보장을 이유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려웠다.

만약 학생이 임신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학교마다 달랐다.

학교 내에 국가자격증을 소지한 '학교청소년상담사'가 배치되어 있는 경기도 H중학교 이미영 상담사는 "학생이 임신했을 경우 출산과 낙태에 따르는 문제점을 이야기해주어 학생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학생이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며 학생과의 의사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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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교육부에서 복지학교로 지정된 서울의 S중학교 상담실에 근무하고 있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는 "보건실이나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YMCA 등 지역 내 청소년 상담 기관과 연결해주는 쪽으로 상담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전문 청소년상담사가 배치돼 있는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이 상담실 이용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유진(가명·18세)씨는 "학교 상담실에 얘기하면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질까봐 두려워요. 학교 선생님은 못 믿겠어요. 선생님들이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도 싫구요"라고 말하면서 비밀 보장에 대한 염려가 학교 상담실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임을 시사했다.

비밀이 보장되는 외부 상담사에게는 상담을 요청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학교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상담 받을 마음이 생길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따라서 학교 상담이 임신이라는 민감한 문제까지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학교 내에 학생 상담을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전문상담사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교육청 교원정책과에 따르면 총 22명의 전문상담교사가 각 지역별로 80~90여 개의 학교를 담당하고 있다.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학교에서는 1만3천여 명의 학생상담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에서 10일의 연수과정만을 마치고 현장에 배치되기 때문에 상담 수준 저하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

이에 대해 전교조 여성위원회 박덕준 위원장은 "최선의 방법은 각 학교마다 전문상담사를 배치하는 것이지만, 그게 힘들다면 상담 현장의 일반 교사나 자원봉사자들도 성폭력 문제나 임신 관련 문제 상담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연수 과정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에서는 "학생이 3일 이상 학교를 결석하면 의무적으로 전문상담사가 개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초중등교육법이나 교육복지법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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