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화의 도시에서 보낸 일년

[서평] <안녕 뉴욕>을 읽고

등록 2006.08.28 17:31수정 2006.08.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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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중학교 때부터 같이 학교를 다니던 단짝친구와 늘 공상을 했었다. ‘넌 장차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니?’라는 물음을 둘 중 하나가 던지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은 이미 낯선 도시로 떠나고 있었다.

때로는 지도책을 펴놓고 이런 저런 도시를 지목하며 공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였다. 낯선 도시에서 뭔가 외로운 듯하면서도 ‘한 낭만’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우리들의 달콤한 꿈이었다.


그런 낯선 도시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 친구는 졸업 후 직장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김천, 울산, 부산, 연천, 구미 등. 나는 친구가 거주지를 옮겨갈 때 마다 내가 살아 볼 수 없는 도시를 잠시나마 밟아보는 그 스릴이 너무 짜릿하여 아주 신이 나서 들뜬 마음으로 친구의 새 둥지를 방문하곤 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몇몇 도시를 전전하며 살았고 그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짐이 너무 좋았다. 한발 더 나아가 나중에는 외국도시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 생겨나서 자꾸 말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정말 실현을 한번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정말 바다를 건너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날아가면 낯선 나라, 낯선 도시가 있는 것일까. 물론 있겠지. 그러나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도무지 실감이 안나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살아봐야 체증이 내려갈 것 같았다. 그래서 얼마 안 되나마 적금을 털어 여비를 마련하여 일본행을 실행하였고 반짝 일년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낯선 도시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 가시게 해 주었다.

그 후론, 내 주제에 더 이상의 ‘해외 살이’는 있을 수 없다며 꿈도 꾸지 않았는데 한자리에서 얼추 십년을 살다보니 다시금 그런 낯선 이국도시에 대한 동경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베트남이나 타이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프랑스 파리는? 북유럽의 저 덴마크는? 터키는? 여고시절 우리나라에 한해서 공상이 이어질 때는 멀어도 내 손바닥 안이었지만 세계로 확대하자 공상의 날개는 끝도 없었다.

그러다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열에 여덟은 뉴욕이 배경이어서, 아니, 미국에는 도시가 뉴욕밖에 없나하며 한 도시만 편애하는 것을 촌스럽다 생각했는데 역시 자꾸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뉴욕에 스며들고 있었다. ‘저기를 나도 꼭 한번 가고 싶네.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면서 뉴욕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미국 땅 이곳저곳을 느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의 중심, 뉴욕에서 살아보기

씨네21
미국 위정자들의 행태를 싫어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땅까지 싫어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미국 땅은 그들과 달리 너무 아름다웠다. 해서 내 동경의 도시로 뒤늦게 미국의 도시들도 추가되었고 그중 뉴욕이 으뜸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내겐 아직 단지 꿈일 뿐인데 그러한 꿈을 현실로 바꾼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안녕 뉴욕>(씨네 21)의 백은하 기자이다. 그가 잘나가는 영화전문지 기자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간다기에 나는 아주 ‘뽀대’나는 공부도 하면서 휴식도 겸하는 ‘유학’인줄 알았다.

그동안의 술값(?)이 아무리 많았다 쳐도 직장생활 연수가 연수니 만큼 주머니도 두둑할 것이고 게다가 ‘약국집 딸내미’의 유학이니 그 부모가 어련했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폼나는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낯선 도시에서 한번 살아보러 간 것이었다.

영화전문지 기자에다 영화를 좋아하였기에 영화의 도시 뉴욕에서 한번 살아보러 간 것이었다. 번듯하기는 하나 갑갑한 학위유학 따위가 아닌 ‘그냥’ 간 여정이라 그 ‘속박 없는 자유’가 무척 부럽고 신선했다.

게다가 살인적 물가에 보태고저 ‘그래도 대 영화전문지 기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체면에 구애 받지 않고 ‘네일 숍’에서 남의 손톱 치장해주며 생활을 영위한 대목은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부분이었다.

작은 방 하나 얻어놓고 적당한 육체노동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타국의 도시 하나를 날로 감상하며 사는 것만큼 환상적이고 신나는 일이 있을까. 덤으로 어쩌다 지나치는 횡단보도에서 ‘스크린 속에서만 보던 그 배우를 몇 미터 앞에서’ 보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리.

이 책은 저자가 영화의 도시 뉴욕에서 일년여를 살면서,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면서 보낸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지의 그의 글처럼 우아하게 쓰지도 않았고 그냥 뉴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을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막연히 뉴욕은 예술의 도시인가 했는데 저자의 눈을 빌려 보니 뉴욕은 ‘영화의 도시’였다. 수많은 대형 극장들이 즐비함은 물론 연중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영화제가 열리는가 하면 곳곳이 영화촬영지였고 오다가다 영화배우들과 스치는 일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한부분인 도시였다.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기네스 펠트로와 에단 호크가 어떤 분수대에서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을 텐데 그곳은 다름 아닌 뉴욕의 한 공원에 있는 분수대였다. 영화 속에서는 도무지 현실에 있는 장소 같지가 않았는데,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그 공간 또한 사라져 추억 속에나 있을 장소 같았는데 뉴욕에 실재한다니.

그런가 하면, <첨밀밀>의 장만옥과 여명이 거닐었던 뉴욕의 차이나타운 곳곳을 기웃거리며 영화를 되씹는 저자의 행복한 얼굴을 상상하자니 영화의 주인공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영화주인공으로 오버랩 되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주인공이 아닌가.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고 또 뉴욕에서 한번 살아볼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장차 생활의 안내서이자 영화의 안내서로 안성맞춤인 책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많은 영화들이 언급되는데 영화 먼저 보고 책을 보아도 좋고 책에 나온 영화 얘기를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아도 무방하다. 하여간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아야 ‘빛’을 발하는 책이다.

안녕 뉴욕 -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

백은하 글.사진,
씨네21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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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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