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묵은 백일홍이 간지럼을 탄다

등록 2006.09.01 10:40수정 2006.09.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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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여름부터 석달 열흘 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이 가을을 마중하고 있다.

한여름부터 석달 열흘 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이 가을을 마중하고 있다. ⓒ 정태현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서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 도종환의 '목백일홍'


여름을 보내고 아쉬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석달 열흘을 발그레 웃음짓는 빠알간 미소. 백일홍을 찾아 길을 떠난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를 지나 해맞이 고장 호미곶을 따라 달리다 보면 구룡포 청소년수련관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곳을 따라 한참을 골짜기로 들어서면 산골동네가 나타난다. 산속 마을이지만 달그림자가 없는 마을이라 明月里(명월리)라 칭하기도 하고 뒷산 명월산이 있어 해봉사 대신에 명월사라 하기도 한다. 명월리. 행정구역상 포항시 남구 대보면 강사3리이지만 해봉사라는 절이 있어 그 마을을 절골이라 부른다.

a 해봉사 대웅전

해봉사 대웅전 ⓒ 정태현


명월산 해봉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5년에 왕명으로 창건된 법화종 사찰이다. 왕명으로 창건된 사찰인 경우는 호국적인 성향이 강한데 이 절은 당시에 이 지역 목장의 군마사육을 기원하는 사찰로 창건되어 명월암(明月庵)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퇴락을 거듭하다. 조선 명종 때 상선대사가 대대적인 중창을 하여 당우가 13동, 승려가 4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다시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1973년에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절에는 대웅전, 용왕각, 범종각, 요사 등이 있는데 모두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 기대하는 고풍스러움은 거의 없다. 대웅전 뜰에 서있는 배롱나무는 제법 큰 것이 꽃피는 여름이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낼 듯도 하다.

이 지역 목장의 군마사육을 기원하는 사찰로 창건되었지만 고려때는 폐사된 것을 조선 명종때에 상선선사(上宣禪師)가 불당 13동의 거찰로 중건하였다. 그러나 철종 말기에 토호들의 방화로 7동이 소실되고 고종 말에는 장기군수의 명으로 명월암 하나만 남기고 전부 철폐되기도 했다.

그러다 1970년에는 주지의 실화로 전소되는 등 명운이 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역사가 깊은 신라고찰의 복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열의와 영일군의 도움으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6년에는 김순임 법은스님이 다시 법당과 요사체를 중건하고 2001년 6월 13일에 사리탑을 건립하였으며 2005년엔 종각불사도 준공되었다. 또 이 곳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유한 사실이 있는 유서 깊은 절이기도 하다.

1458년경 단종을 쫓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비정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중이 되어 방랑길에 올라 구미 금오산, 경주의 기림사를 거쳐 이곳 해봉사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a 해봉사앞의  백련, 아직 꽃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해봉사앞의 백련, 아직 꽃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 정태현

이 해봉사에는 신비의 백일홍이 한 그루 있는데 다섯개의 나무줄기 가운데에 가장 굵은 줄기 아래에 신의 손(?)이 있다. 그런데,수령 약 300년이 되는 이 백일홍은 철종 때 일어난 화재에 다른 거목들이 모두 불에 타도 살아 남았다고 전해진다. 백일홍은 꽃이 피면 100일동안 시들지 않고 피기를 반복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a 이 절의 주지스님인 법은스님이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절의 주지스님인 법은스님이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태현

마침 기자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이 절의 주지스님인 법은스님이 나와 이 나무를 설명해 주면서 가지의 밑둥치를 간질거렸다.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이 고목은 작은 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붉게 핀 꽃잎들이 발발떨기 시작한다.

믿거나 말거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해봉사 경내에서 아름다움을 혼자 뽐내고 있는 상징적 나무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 가지가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와 가지끼리 다시 합치는 생식현상을 보이는데다 다섯개의 굵은 가지중에서 가장 굵은 가지 하나는 신의 손(?)이 받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신의 손이 보입니까?

a 정말 신기하다. 가장 굵은 가지를 보면 아래쪽을 손이 받치고 있는 듯하다.

정말 신기하다. 가장 굵은 가지를 보면 아래쪽을 손이 받치고 있는 듯하다. ⓒ 정태현


명월암 가는 길
-매월당 김시습

산넘고 물건너
황혼이 깃들무렵
명월암 다다르니
창명(滄溟)에 달이 뜨네.
승님은 어디가고
불당(佛堂)에 촛불 비쳐
낙엽이 광풍(狂風)에 쌓여
손의 뺨을 친다.
천년노불(千年老佛)앞에
합장기도(合掌祈禱)하니
동자(童子)는 불 밝혀
길손을 인도하네.
산채맥음(山採麥飮)이
공복(空腹)에 족(足)하오나
약주(藥酒) 한 잔 없음이
욕객(浴客)의 한(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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