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첫 여자가 소서노일까?

[주몽 2배로 즐기기 1] 주몽 22살에 부여를 떠나다

등록 2006.09.01 14:50수정 2006.09.14 13:44
0
원고료로 응원
a

ⓒ MBC

MBC드라마 <주몽> 제작진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재미와 흥미를 최대한 유발시키기 위해 주몽과 소서노의 첫 만남을 부여로 설정하였다. 우연한 만남과 계속되는 인연을 계기로 주몽은 연타발 상단에 들어가 상단 일꾼으로 일하면서 소서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주몽과 소서노의 만남은 부여가 아닌 졸본 부여에서 첫 인연을 갖게 된다. 그것도 실제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주몽과 소서노가 만난 기록은 '일설', 즉 전해진다는 소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흥미를 더해 가는 주몽을 두 배로 즐기기 위해 2천 년 전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에 금와(金蛙)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늘 주몽과 함께 놀았다. 그들의 재주는 모두 주몽에게 미치지 못했다. 주몽의 활 솜씨와 무예솜씨에 대적할 수 없었던 큰아들 대소(帶素)는 드라마처럼 태자 자리가 위협받자 금와왕을 찾아왔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바가 아니라 그 사람됨이 용맹하니, 만약 일찌감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청컨데 그를 제거하소서."

드라마처럼 주몽을 아꼈던 금와는 대소의 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말을 기르면서 주몽은 날랜 말을 알아보고, 먹이를 적게 줘 야위게 하고, 노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두 마리 말을 금와에게 보이자, 살찐 말은 자기가 타고 야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

그 뒤, 주몽은 들에서 자주 사냥을 하게 되었다. 사냥을 할 때마다 주몽에게 화살을 적게 주었는데도 들짐승을 많이 잡아오자 왕자와 신하들이 다시 주몽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계획을 유화부인이 사전에 알아차려 주몽은 오이와 협보, 마리와 함께 부여를 떠나게 된다.

부여를 떠날 때 주몽의 나이는 22살이었다. 떠나기 전에 예씨부인과 결혼을 했는데, 드라마에서 예씨부인을 '부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언제 결혼했다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몽이 떠난 뒤 예씨부인이 주몽의 아들을 낳았다. 그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조가'를 지은 고구려 2대 왕 유리왕(類利王)이다.


부여에서 떠난 주몽 일행은 졸본천(卒本川, '위서'에는 홀성골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러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비류수가에 초막을 엮고 지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왕이 주몽을 보고 보통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보고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본기에도 고구려본기처럼 세 명의 딸 가운데 둘째 딸을 아내로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혼 후 주몽과 졸본부여 둘째 공주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이 비류, 둘째가 백제를 건국한 온조였다. 두 아들에 대해 백제본기에는 "혹은 주몽이 졸본에 도착해 월군녀에게 장가를 들어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월군녀에게 낳았다는 일설도 있다는 것을 소개했다. 따라서 졸본부여 공주와 주몽 사이에 비류와 온조가 태어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소서노는 도대체 언제 만났다는 얘기인가?

서소노 3∼4번째 부인 추정, 고구려본기에는 기록 없어

정작 주몽의 일대기와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고구려본기'에는 소서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고구려본기'에는 첫 부인 예씨와 졸본부여 공주에 대한 얘기만 나올 뿐이다.

소서노에 대한 기록은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편에 나와있는데, 그것도 '일설'이다. 다시 말해 정확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설에는 이렇다는 것이다. 고구려본기에 전혀 소서노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백제본기에 그녀의 이름이 왜 실렸을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백제의 건국 주체에 대해 이른바 '시조 온조설'에 입각해 백제본기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백제 건국 주체에 대해 '온조설'과 '비류설', 그리고 '구태설'(북사 94, 수서 81 백제전)이 있는데 김부식은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부식은 백제본기 자체는 '시조 온조설'에 충실해 계보를 정리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백제 건국 주체가 모호한 관계로 김부식은 온조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을 덧붙여 백제본기에 소개하였다. 여기서 소서노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편에서도 주몽이 부여에서 만난 예씨부인을 첫 번째, 졸본부여 공주를 두 번째 부인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서노가 3번째 부인인가? 백제본기에 일설에는 그의 남편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홀로 살다 주몽을 만나 재가하였는데, 이 시기를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운 시기로 규정하였다.

종합해보면 예씨가 첫 부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둘째 부인이 누가 먼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몽이 졸본에 도착한 뒤 졸본부여 공주, 월군녀, 소서노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먼저 만나 결혼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에 월군녀와 소서노는 '일설'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졸본부여 둘째 딸은 일설이 아닌 정식으로 결혼한 여인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졸본부여 공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소서노와 월군녀는 들려오는 일설에 따라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3∼4번째 부인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주몽 2배로 즐기기'는 5편으로 나눠 연재할 예정입니다. 

<들어가는 순서> 
1. 주몽의 첫 여자가 서소노인가?
2. 여자 잘 만나 고구려 세운 주몽
3. 고구려와 부여 누가 더 강했을까?
4. 주몽은 대소에게 복수했을까?
5. 종합

덧붙이는 글 '주몽 2배로 즐기기'는 5편으로 나눠 연재할 예정입니다. 

<들어가는 순서> 
1. 주몽의 첫 여자가 서소노인가?
2. 여자 잘 만나 고구려 세운 주몽
3. 고구려와 부여 누가 더 강했을까?
4. 주몽은 대소에게 복수했을까?
5. 종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4. 4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5. 5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