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잘 만나' 고구려 세운 주몽

[주몽 2배로 즐기기 2]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등록 2006.09.05 15:01수정 2006.09.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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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주몽> 제작발표회 사진

<주몽> 제작발표회 사진 ⓒ 신광재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자식은 몇 명이나 낳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쉽게도 둘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없다.

주몽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예씨 부인에게서 낳은 고구려 2대왕 유리(類利, 혹은 유류라고도 한다)는 주몽의 맏아들로 어느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과연 주몽의 아들인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는 누구의 아들일까?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 한 가닥 풀어갔듯 그들의 출생에 대한 베일을 벗겨보자.

먼저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이들 부모에 대한 세 가지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정식적인 기록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혹', 또는 '일설'이다.

<삼국사기>에 정식 기록 이외에 일설을 싣고 있는 데는 이미 언급했듯이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저술한 김부식이 백제 건국 주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해져 오고 있는 사료들을 여기저기서 모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완성한 시기가 1145년으로, 1천년 전 역사를 서술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편 첫 구절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는 추모(鄒牟),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몽이 졸본부여 공주와 결혼한 뒤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적고 있다.

두 번째는 주몽이 졸본에 도착해 월군녀에게 장가가 두 아들을 낳은 것으로 백제본기에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優台)와 소서노 사이의 아들로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우태와 결혼해 비류와 온조를 낳았는데,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혼자 살던 소서노가 주몽을 만나게 된다.

a <주몽> 제작발표회 사진. 소서노.

<주몽> 제작발표회 사진. 소서노. ⓒ 신광재

종합해 보면 비류와 온조는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에 태어난 것이 정식적인 첫 번째 기록이며, 주몽과 월군녀 사이에서 태어난 설이 두 번째,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설이 세 번째이다.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는 주몽, 아니면 우태 둘로 압축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졸본부여 공주, 월군녀, 소서노 세 명이다.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첫 머리에 주몽의 아들로 기록된 점을 볼 때 일설로 소개된 우태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주몽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매정하게 비류와 온조가 소서노의 자식이 아니라고 단정해 버릴 경우 드라마에서 소서노의 배역은 한 줌의 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부식이 1천년도 넘은 역사를 저술한 것과 월군녀에 관한 기록이 한 줄에 불과한 데 비해 일설이기는 하지만 소서노에 관한 기록은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비춰보면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다.

딱딱한 '정사'보다는 흥미진진한 '야사'가 드라마 특성상 입맛에 맞기 때문인 듯 MBC 제작진은 지난주부터 소서노를 마치 졸본부여 공주로, 연타발을 왕처럼 줄거리를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서노를 졸본부여 공주로 살짝 바꿔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머지않아 드라마에서 둘 사이에 비류와 온조가 태어나려면 미망인(未亡人) 소서노가 아닌 졸본부여 공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백제를 건국한 비류, 온조는 누구의 아들인가?

백제본기에 '일설에는 이러하다'라는 주몽과 소서노의 첫 만남을 살펴보자.

드라마에서처럼 우태는 행수의 아들로 등장하지만, 그의 신분은 일개 행수의 아들이 아닌 금와의 아버지였던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다. 우태가 해부루 아들(금와의 동생일 가능성이 높다)의 서자이기는 했지만, 그때는 적손(嫡孫)과 서손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부여 왕의 손자인 우태와 연타발 상단의 딸 소서노의 결혼은 정략결혼(政略結婚)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 사이에 비류와 온조가 태어난 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이때 주몽이 부여에서 도망쳐 졸본부여로 와 비류수 가에 초막을 엮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국호를 고구려라고 한 뒤 소서노를 왕비로 삼아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주몽이 소서노를 총애하고 우태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자기 아들처럼 대한 데는 그녀의 집안, 즉 연타발 상단의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부여에서 첫째 아들 유리가 찾아오게 되자 주몽은 그를 태자로 세웠다. 이에 비류가 온조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a <주몽> 세트장에서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다.

<주몽> 세트장에서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다. ⓒ 신광재

"처음에 대왕께서 부여에서의 환란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까지 왔을 때 우리 어머니가 집안의 재물을 쏟아 부어 나라의 창업을 도와 이루었으니,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공로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왕께서 세상을 뜨시자 국가가 유류에게 돌아가니 우리들이 공연히 여기 있으면서 군더더기 촉처럼 암울하고 답답하게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점쳐 따로 나라의 도읍을 세우는 것이 나으리라."

비류의 말을 듣고 온조와 무리들이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로 떠났다. 비류의 불만처럼 주몽은 소서노 집안의 재물이 아니었으면 고구려를 강성한 국가로 건국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여의 왕자였던 주몽 또한 미망인에 불과했던 소서노를 왕비로 맞이하게 된 데는 그녀 집안의 든든한 배경이 없었다면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본기 일설이기는 하지만 주몽과 소서노의 결혼은 고구려를 창건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에 비류와 온조가 태어난 것이 가장 설득력이 높은 듯하며, 우태와 소서노의 자식일 가능성이 두 번째이다.

어느 것이 정확히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여자 모두 주몽에게 고구려를 창업하는 큰 힘이 되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어찌되었건 주몽은 여자를 잘 만나 '고구려'라는 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주몽 2배로 즐기기'는 5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들어가는 순서> 
1. 주몽의 첫 여자가 소서노인가? 
2. 여자 잘 만나 고구려 세운 주몽 
3. 고구려와 부여 누가 더 강했을까? 
4. 주몽은 대소에게 복수했을까? 
5. 종합

덧붙이는 글 '주몽 2배로 즐기기'는 5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들어가는 순서> 
1. 주몽의 첫 여자가 소서노인가? 
2. 여자 잘 만나 고구려 세운 주몽 
3. 고구려와 부여 누가 더 강했을까? 
4. 주몽은 대소에게 복수했을까? 
5.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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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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