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아래 텃밭에 피어난 부추꽃입니다.배만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무렵이면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가을을 반기는 꽃이 있습니다. 마치 여름날 더운 밤에 하늘 바라보며 헤아렸던 별들이 총총 내려앉은 것처럼 예쁜 꽃. 그 예쁜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부추는 봄부터 몸이 잘리는 아픔을 견뎌야 했고, 더운 여름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몸이 약했습니다. 더구나 한창 자라야 할 사춘기 시절에는 빈혈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의사는 어머니께 쉽게 설명을 한다고 ‘피가 모자란 병입니다’ 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어머니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특히 피와 관련된 것들은 모조리 구해 먹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 때문에 저는 일년이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빈혈이라는 말은 몰라도 피가 모자란다는 말은 어머니께 커다란 충격이셨던 것이지요.
그때 많이 먹었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부추입니다. 특히 봄에 처음 나는 부추는 사위에게도 안 준다며 제게 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피가 한 바가지씩 들어 있다며 다른 가족들은 못 먹게 하고 제게만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 난 부추는 제가 다 먹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뒤에도 다른 가족들은 은근히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잘 먹지 않았습니다. 피가 많다고 하니 제게 다 먹으라고 양보를 해 준 것이겠지요.
살짝 데치거나 하면 양분이 없어진다며 언제나 싱싱한 부추나물로 만들어 주셨지요. 그렇게 날마다 먹었던 부추지만 싫지가 않았습니다.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도 않았습니다. 부추무침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벼 먹기도 하고,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밭에는 부추가 늘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추에 뿌리는 거름은 겨우내 군불을 넣으면서 모아둔 재가 전부였지요. 그래도 부추는 잘 자랐습니다. 비료 한 줌 뿌리지 않아도 토실토실한 게 아주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바쁜 모내기철이 되면 부추를 캐서 다듬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감자를 깎아 물에 담아 두고 숙제를 하지요. 그리고 부추를 캐러 갑니다. 캐 온 부추를 티끌 하나 없이 곱게 다듬는 일은 어린 제게 약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면 금방 할 일은 제가하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그러면 저녁에 또 맛있는 부추무침을 먹을 수 있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