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한 사람들이 수의도 미리 준비하지"

예산군 삼베길쌈마을을 찾아서

등록 2006.09.04 16:50수정 2006.09.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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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선애

올해는 입춘이 두 번 들고, 윤달이 끼어있는 해다. 8월 24일부터 9월 21일까지는 이른바 쌍춘년 윤달이다.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을 감시하지 않아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윤달을 맞아 가장 바쁜 곳은 장례업체다.

조상묘를 이장하거나 수의를 미리 제작하려는 자손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쌍춘년 윤달에 수의를 해 두면 장수한다는 풍습이 있어 삼베길쌈·수의 제작 마을에서는 밀려드는 주문을 받느라 여념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다복한 사람들이나 수의를 미리하지, 아무나 못혀. 집안에 우환이 없고, 자손들이 효심이 깊어야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예산군 예산읍 산성2리에서 수의를 꿰매는 명희득(83)할머니는 익숙하게 바느질을 하면서 옛풍습과 오늘의 세태에 대해 하고픈 말을 쏟아냈다.

"요즘이야 본인들이 나서서 다 하지만 옛날에는 자손들이다 했어. 아주 동네 잔치였지. 마을 사람들이랑 함께 바느질 하고 푸짐하게 음식도 장만해 나눠 먹고 말이야. 지금 젊은이들이야 뭐 아나. 건성이지."

a 예산읍 산성2리 할머니가 한땀 한땀 무병장수를 비는 정성으로 수의를 꿰매고 있는 모습.

예산읍 산성2리 할머니가 한땀 한땀 무병장수를 비는 정성으로 수의를 꿰매고 있는 모습. ⓒ 장선애

수의를 만드는 마을 대부분이 재봉틀을 쓰고 있지만 이곳 산성2리에서는 손바느질을 고수하고 있다. 장수한 노인들이 만들어야 수의를 입게 될 사람도 무병장수 한다고 하는데 13년째 한팀이 되어 수의를 만드는 할머니 6명의 나이는 77세부터 87세까지 분포돼 있다.

젊은 시절부터 수 십 년 동안 이어온 바느질 솜씨는 말할 것도 없다. 젊었을 적 같지는 않아 속도가 더디지만 옛날 방식대로 만들겠다는 자세를 보면 '마지막으로 가장 격식있게 차려입는 옷'을 맡기는 마음이 든든해 질듯.


지역마다 방식이 다 다르지만 남자는 저고리 심의(겉옷) 바지 복건, 여자는 저고리 치마 원삼 족두리가 기본이다. 여기에다 얼굴싸개, 손싸개, 머리카락과 손발톱 주머니, 배 덮개, 버선과 신발, 이불 등을 더해 남자는 17~20가지, 여자는 16~17가지나 된다.

"충청도가 가지 수가 제일 많아. 그리고 수의는 넉넉하게 해야지. 작으면 안돼."


그래서 이 곳에서는 한 사람 수의제작에 필요한 옷감을 삼베 150자에 인조견 한필 정도로 잡는다.

아침 일찍부터 모여 하루 종일 일하면 수의 한 벌은 마무리할 수 있다. 수의 한 벌 수공비가 10만원이니, 여섯 명이서 한 벌 만들면 한 사람 일당이 2만원도 안되는 셈이다. 모임 총무인 강현점(80) 할머니는 "수의를 만드는데 얼마인가를 따지는 세태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나마 흥정이나 안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직접 짠 삼베 어디서 파나

예산군농업기술센터(041-333-0661)가 지원하는 삼베길쌈마을이 있다. 광시면 신흥리와 운산리.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신흥리에서는 대마를 직접 재배해 원료까지 생산해 낸다.

올해 장수마을로 지정된 운산리 할머니들은 신흥리에서 재배된 대마를 구입해 30여명이 함께 삼베길쌈을 하고 있다. 두 마을 모두 수의도 제작한다. 30공정이 넘는다는 삼베 제조과정은 1년내 공정이 돌아갈 정도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진짜'를 만들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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