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올 수 없었던 자의 삶과 죽음

[책소개] <라인 강변에 꽃상여 가네>

등록 2006.09.05 14:52수정 2006.09.05 14:53
0
원고료로 응원
한울
국정원 진실위는 올해 초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동백림 사건)과 관련, “박정희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과장·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동백림 사건’ 관련자 중 한명인 ‘공광덕’이라는 개인이 해외에서 병마를 만나 싸운 기록이면서, 동시에 조국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던 재외 한국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글쓴이는 남편 공곽덕의 투병기라는 지극히 개인의 사생활을 담으면서, 그가 살아낸 시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글은 ‘동백림 사건’의 허구성을 고발하거나 공광덕을 만나 민주화운동에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는 아니며, 그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고, 그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 여자의 이야기다.

‘공곽덕’이라는 인물을 만나 그를 사랑하고 그의 병을 함께 이겨내려던 한 여자의 42일 간 일기이며, 그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화여대 교수이면서 이른바 ‘유부녀’이고, 두 아이의 엄마였던 글쓴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혼과 재혼, 독일 망명, 남편과 사별, 미국을 거쳐 귀국 등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식일기라는 틀 속에서 어린 시절 일본군 병사에게 몸을 주고 쌀밥을 얻은 이야기부터, 첫번째 결혼이야기, 두 아이 이야기, 독일 망명생활과 민주화 투쟁 등 여성으로서 살아낸 식민지와 분단조국의 이야기가 대화나 회고 형식으로 담겨있다.


42일간 계속된 단식투병이라는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보여주며 그와 첫 만남, 사랑, 삶, 사상 등을 고루 전달해 주고 있기에 이 책은 암 투병수기이면서 공광덕에 대한 짧은 평전이며, 글쓴이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한편 민주화운동을 본격으로 다룬 내용은 아니지만 윤이상, 홍세화, 리영희, 이응노, 정범구, 안병무, 루이제 린저 등과 주고받은 편지, 대화 등도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남편 공광덕의 사망신고서를 손에 쥐고서야 조국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된 글쓴이의 이야기는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숨진 윤이상, 고문 후유증으로 힘들게 살다간 천상병, 현대판 매카시즘의 피해자들인 송두율, 강정구 교수 등을 떠올리게 한다.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홍세화는 이제 국내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세상은 바뀐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참말로 www.chammalo.com 에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참말로 www.chammalo.com 에 실립니다.

라인 강변에 꽃상여 가네

조병옥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