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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던 밤이 며칠 전이었는데, 이제는 창문을 닫고 잠을 자지 않으면 추워서 새벽에 잠을 깨게 된다.
어머님이 계신 경기도 마석을 찾아가자, 어머님이 텃밭에 김장용 배추를 심었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님은 홀로 마석에서 생활하시는데 텃밭 가꾸는 재미에 흠뻑 빠지셨다.
“텃밭에 김장용 배추를 어제 심었는데, 잘 자라줘야 하는데 어떨지 모르것다!”
“어머니, 벌써 김장용 배추를 심었어요? 계절이 빠르긴 하네요.”
“야야, 벌써가 뭐냐? 늦은 셈이지.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다가올 때 김장용 배추를 심는단다. 그러니 나는 많이 늦은 것이지.”
“그렇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군요.”
그러고 보니 어머님 집 베란다에는 햇볕에 말리기 위해 매달아 논 빨간 꽈리가 빨래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몇 개의 옥수수가 햇볕을 밭아 잘 말라가는 모습이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하늘을 바라다봤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에서 보는 하늘은 더 산뜻한 느낌으로 온다. 가을 하늘, 정말 아름답다. 누군가가 말했듯 손대면 툭 터질 것 같기도 하고,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가을 하늘, 흘러가는 구름이 누군가의 지휘를 받아 '매스게임'을 펼치듯 열심히 뭉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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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큼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 하늘이 푸르고 높다. ⓒ 정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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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는 빨래 말리기 좋은 날이 많다. ⓒ 정연창
내 어릴 적 잠자리를 쫓아 살금살금 집게 손을 하고 다가갔던 고추밭, 고추 위에 앉은 고추잠자리 위로 한없이 아름답던 가을 하늘의 추억이 남아 있는데…. 중년의 나이에 바라본 가을 하늘도 변함없이 푸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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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 고추와 가을 하늘 ⓒ 정연창
가을 하늘의 변화를 어떤 예술가가 흉내낼 수 있으랴? 지난달 태풍이 지나간 후 서울 동북지역의 하늘을 수놓았던 무지개,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일곱 빛깔 주단으로 활짝 펼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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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하늘 저편으로 무지개가 보인다. ⓒ 정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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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구름 의 아름다움 ⓒ 정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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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이 지는 가을하늘의 모습 ⓒ 정연창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은 하늘에만 펼쳐지지 않는다. 흐르는 개울에도 구름이 흐르고, 물속에서 하늘이 일렁인다. 고즈넉한 시골에 시냇물 소리만 들리고, 물속에 빠진 가을 하늘은 물길을 따라 장난질이다.
'아! 그냥 이곳에서 살고 싶다.' 가을 하늘의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리기 어려워서 한 움큼의 물을 두 손에 담아 물 위의 가을에 '훅' 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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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에 비친 가을 ⓒ 정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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