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맛보는 봄맛 '쑥 부침개'

내일은 아내가 꿇여줄 쑥국이 기다려집니다

등록 2006.09.06 08:29수정 2006.09.0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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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쑥차를 해먹기 위해 캤던 쑥. ⓒ 김현

“오늘 일찍 들어와요. 별식 해줄게.”
“무슨 별식? 뭐 닭볶음이라도 한 거야?”
“와 보면 알아요. 다른 데 가지 말고 암튼 일찍 와요. 알았죠.”

퇴근 시간이 다될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의 닭볶음이나 감자탕 솜씨는 일품입니다. 가끔 아이들이나 남편이나 입맛이 없을 때 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리가 무슨 별식은 아닐 터인데 별식이란 말에 갸우뚱하며 집에 와보니 구수한 냄새가 가득합니다.

“뭐야. 무슨 부침개 하는 거야. 이게 뭔 별식?”

들어오며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내가 그냥 웃으며 씻고 앉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부침개도 부침개 나름이라며 막 프라이팬에서 노랗게 잘 익은 부침개를 접시에 꺼내옵니다.

“먹어 봐. 뭐가 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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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살짝 데칩니다. ⓒ 김현

아내의 말을 듣고 부침개를 떼어 입에 넣어 봤습니다. 그런데 맛이 좀 색다릅니다. 연거푸 몇 점을 떼어 계속 먹습니다. 그런데 향이 나면서도 느끼하지가 않습니다. 나의 표정을 보던 아내가 “어때?” 하면 다시 묻습니다.

“이거 뭐로 만든 거야. 무슨 쑥 냄새 같은데… 그런데 담백하고 느끼하지도 않고 맛있는데.”
“거봐요. 내가 별식이라 했잖아. 그거 쑥 부침개야.”
“쑥? 요즘 쑥이 어디 있어. 있어도 쇠어서 못 먹잖아.”
“봄에 당신이 쑥차 해먹는다고 쑥 뜯어서 말려 놨잖아. 그걸로 했어.”

아내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집에서 쑥 부침개를 해 먹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 집에선 해마다 봄에 쑥을 캐어 말려 놓았다가 가을이건 겨울이건 쑥차도 해먹고 쑥국, 거기에 쑥 부침개까지 해먹는다는 소릴 듣고 집에 와서 바로 쑥 부침개를 한 것이라며 웃습니다.

“아니, 쑥 마른 걸로 쑥국도 끊여먹을 수 있데?”
“응. 마른 것도 물에 풀어 놓으면 막 캔 것처럼 파랗게 올라와. 그걸로 쑥국 끓이면 봄맛을 느낄 수가 있어. 내일 저녁엔 된장 풀어 쑥국 해줄 테니까 기대하라구요.”
“에이, 그냥 오늘 해주지. 이왕 한 김에.”
“그냥 오늘은 부침개로 만족하세요, 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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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친 쑥을 그늘에 말립니다. 말릴 땐 아주 바짝 말려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차로 먹으면 그 향이 좋습니다. ⓒ 김현

그동안 우리 집에선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 차를 만들어 왔습니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은 난 봄이면 감잎과 구기자 잎을 따 쪄서 말렸다가 차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다 올 핸 쑥차도 해먹을 요량으로 아내와 아이들이랑 쑥을 캐어 살짝 데쳐 말렸습니다.

여러 차를 만들어 놓으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손님도 대접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어 아주 좋습니다. 특히 차를 만드는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요. 그렇게 함께 만든 차를 온 가족이 앉아 마실 때면 각자 취향에 맞게 마십니다. 그러면서 차의 맛을 이야기하며 효능까지 아는 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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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캐어 말렸던 쑥을 이용해 만든 부침개. 담백하고 쑥의 독특한 향기가 좋습니다. 많이 먹어도 느끼함이 없어 아주 좋습니다. ⓒ 김현

이번 쑥 부침개도 차를 만들어 먹기 위해 준비해 놓은 건데 이렇게 다용도로 쓰일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파전이나 감자전, 김치전 같은 것은 좀 먹다 보면 느끼함이 있는데 쑥을 이용한 부침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담백하면서도 쑥의 고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 고여 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에 아내가 해준 쑥 부침개는 아내의 말대로 별식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을의 입구에서 봄의 맛과 내음을 맛보며 내일 아내가 꿇여줄 쑥국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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