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적인 미국 대북 정책, 과거 청나라와 닮았다

1884년 청국 수석대표 원세개 사례를 통해 본 '외교'

등록 2006.09.06 16:25수정 2006.09.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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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을 외면하면서 북한을 포위 압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장외로 나간 북한에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국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실체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할 때, 미국의 대북 전략은 모순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체를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한다는 것은 개념상으로, 또 논리적으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긍정적 방향이든 부정적 방향이든 간에,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모종의 성공을 거두려면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순의 잉태는 언젠가는 파국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미국의 대북정책

이 같은 외교상의 개념적 모순을 보여 주는 사례가 1880년대의 조선-청나라 관계에서도 발생했다. 임오군란(1882년) 개입을 계기로 사상 최초로 한반도에 대한 내정간섭에 성공한 청나라는 '경험이 일천한 탓'인지, 한편으로는 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선의 실체를 인정하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말았다.

청나라가 1882년과 1884년에 체결한 2개의 국제협정을 통해 그러한 모순을 살펴보기로 한다.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8월 23일(음력) 체결된 조선-중국 상민수륙무역장정(이하 '무역장정')에서 중국은 조선과 대등한 조약을 맺을 의사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이러한 청나라의 의지는 무역장정 제8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제8조에서는 무역장정의 최종적 개정권을 청나라 황제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역장정에 대해 청나라 국내법의 위상을 부여했다. 실질적으로는 조선과 청나라 간의 통상조약이었음에도, 청나라 황제에게 개정권을 인정한 제8조에 의해 무역장정은 사실상 청나라의 국내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조선을 대등한 실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청나라의 '오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모순되는 사건이 거의 2년 만에 발생했다. 조선과 대등한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던 청나라가 그만 그런 대등한 조약을 체결하고 만 것이다. 이는 1884년 8월 15일 조선-청나라-미국-일본-영국 5개국에 의해 체결된 '인천 제물포 각국 조계장정' 체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5자회담'의 각국 수석대표로 나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측 수석대표는 서리독판교섭통상사무(외교장관 직무대리) 김홍집, 청나라 측 수석대표는 흠명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 원세개, 미국 측 수석대표는 특명전권공사 푸트, 일본 측 수석대표는 흠차변리공사 죽첨진일랑, 영국 측 수석대표는 특명전권공사 파아크스.

여기서 원세개의 직함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의 직함에는 '흠명(欽命)'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다. 이는 원세개가 청나라 황제를 대표하여 '5자회담'에 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세개가 참여한 그 5자회담에는 조선 측 외교장관 서리인 김홍집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황제를 대표하는 자가 조선 외교장관 서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조약을 체결했다면, 이는 청나라가 조선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과 대등한 조약을 체결할 수도 없고, 또 조선을 실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청나라의 기본 입장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청과 원세개, 왜 논리적 모순 범한 것일까?

그렇다면, 청나라와 원세개는 왜 이런 논리적 모순을 범한 것일까? 물론 모르고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알면서도 이런 논리적 모순을 범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국가적 실리' 때문이었다. 위 조약은 인천에 외국인 조계를 설정하기 위한 조약이었다. 청나라로서도 자국 상인(청상 혹은 화교)들이 인천에서 상업 활동을 하게 하려면, 그 5자회담에 반드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선을 실체로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국가적 실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선과 함께 5자회담에 나간 것이다.

청이 조선에 흠명전권대신을 보내면, 이는 조선을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하여 흠명전권대신이 아닌 자를 5자회담 테이블에 내보내면, 미국-일본-영국 측에서 형식상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또 흠명전권대신이 조선 외교장관 서리와 대등한 협상을 하게 되면, 이 역시 조선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청나라가 이 자리에 조선 외교장관 서리가 나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이 나오도록 압력을 가했다면, 그 경우 역시 미국-일본-영국이 형식상 문제점을 제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청나라는 조선을 외교적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인천에서 청나라 조계를 얻겠다는 욕심에 할 수 없이 '예외'를 인정해 버린 것이다.

이외에도 청나라는 이후 1894년까지 조선에서 숱한 모순과 과욕을 범하였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청나라의 조선 장악을 지지하던 영국-미국 등의 서양 열강이 1894년 청일전쟁 시점에서는 사실상 일본을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이러한 외교적 실패는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882∼1894년의 12년 동안 범한 각종 모순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청나라가 국제적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오늘날 대북 정책에서 개념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의 실체를 한정적 범위에서만 인정하면서 북한을 계속 포위 압박하려는 미국의 계산이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개념적 모순이 계속 쌓이게 되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잃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대북 정책에 일관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그러한 일관성을 가지려면, 북한을 인정하든지 부정하든지 양단 간에 분명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태도는 직접 당사자인 북한에 혼란과 불신을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 처지에서 볼 때에는, 자국에 대한 태도가 불분명한 나라를 신뢰하고 회담 테이블에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미국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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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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