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이 무르익는 만큼 가을도 무르익어가고 있다.김지영
골을 타고 오르는 저녁 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하고, 김장배추 농사준비는 진작부터 시작되었고, 더군다나 조생 밤에 대한 농협 수매는 이미 시작되었다. 비로소 나는 이곳에 없는 휘황한 여인네들의 자극적인 옷차림이 아니어도 자연 그대로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살 때 느꼈던 계절의 변화와 시골 내려와 살면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울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 ‘그렇구나,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시골에서는 ‘아~ 가을이구나’하고 감탄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것이 가미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모습들을 보며 절로 탄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자연(自然)이란 말이 주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자연(自然)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위선도, 욕심도, 타성도 혹은, 산업시대를 관통해온 불가해한 인간의 개발논리도 없이 스스로 그렇게 되는 모습들 말이다. 아침이면 밝아지고, 밤이 되면 깜깜해지고, 더우면 덥고, 추우면 추운 대로, 달이 기울면 기우는 대로, 달이 차면 차는 대로, 곡식이 익으면 익는 대로 그런 대로 말이다.
왜 도시의 밤은 대낮처럼 밝아 불면의 밤이어야 하는지, 철에 맞는 과일이 사라져야 하는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보지 못하는지, 기껏 여인네들의 옷차림으로 계절의 변화를 간파해야 하는지 시골에 내려와서야 조금씩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