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히서 글고름의 '신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정회석, 고수는 전 국립창극단장 정회천김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의욕이 결과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계기와 의미는 충분했으나 세계의 낯선 벽은 호락호락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피를 토하고, 인분을 받아먹으며 독공(득음을 위한 소리수련)에 매달리는 소리꾼들이 아니다. 또 판소리는 다른 장르를 섭렵하고, 협력하는 특성을 숨기고 있기에 태생적으로 크로스오버에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다.
판소리는 경상도의 메나리, 한양지역의 책 읽는 소리 송서, 농민들이 함께 부르며 노동의 고단함을 달랬던 농요, 장사지낼 때나 부르던 노래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판소리 바깥의 것들을 자신의 살과 뼈로 받아드렸다.
그럼에도 7일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 목요상설이라는 창작지원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마련된 정회석의 판소리 창작무대는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정회석은 현재 판소리 계파 중 예술성에서 으뜸 대접을 받는 보성소리의 130년 소리가계를 잇고 있고, 평소에도 여기저기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라 그의 크로스오버는 이변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한글 창제 이후 최초로 쓰인 서사시인 용비어천가를 구히서씨가 고르고 걸러 새롭게 만든 단가 '신 용비어천가'로 공연을 연 정회석. 우선 그를 익히 아는 청중을 위해 심청가 눈대목인 '범피중류'를 집안 형님인 전 국립창극단장 정회천의 북장단에 맞춰 불렀다. 여기까지는 이 날 공연이 여느 판소리 무대와 딱히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