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보던 <초원의 집>을 책으로 읽다

[서평]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등록 2006.09.08 12:20수정 2006.09.0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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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집>의 제3권 '플럼시냇가'의 겉표지.
<초원의 집>의 제3권 '플럼시냇가'의 겉표지.김은주
어렸을 때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을 봤던 기억이 있다. 수염이 텁수룩한 자상한 아버지와 곱고 아름다운 엄마, 그리고 어린 두 딸이 숲 속 통나무집에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그런 내용이었다. 겨울에는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며 놀고,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자연이 공짜로 준 열매도 따먹으며 자연과 어울려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었다.

하도 오래 전이라 그 내용을 속속들이 기억은 못하나 자연에 순응하며 여유 있고, 행복하게 살던 그들의 모습이 가끔 생각나곤 했다. 지금은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 아침이슬이 묻어있는 복숭아를 따먹으며, 밤별을 헤며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런 꿈을 품게 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TV 속 한 장면으로 아련하게 추억으로 남아있던 <초원의 집>을 도서관에서 책으로 발견하고는 무척 기뻤다. 1980년대 초에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방송됐던 <초원의 집>이 사실은 드라마 대본이 아니라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었다.

낭만 그리고, 절망을 이겨내는 식구들의 이야기

<초원의 집>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저자가 노년에 접어들어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이 생각나기 시작해 쓴 것이었다. 보통 할머니들이 “내 살아온 것을 글로 쓰면 책 열 권을 쓸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로라는 자신의 살아온 경험을 책 9권으로 만들어냈다.

이 책은 로라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미국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는 서부영화에서 많이 봤던 서부개척시대이기도 하지만 책을 통해서, 그것도 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듣는 당시의 모습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히고 있다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로라가 4살 때 숲 속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 때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쫓아 포장마차를 타고 인디언 거류지에서의 생활, 토굴 집 등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마침내 드스메트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학교도 다니고, 교사도 된다. 그리고 나중에 남편이 되는 와일더 청년과 데이트하는 모습과 함께 마지막 9권에서는 결혼한 로라의 신혼을 보여주고 있다.


내 기억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제 1권에 해당하는 ‘통나무 집’에서의 생활이다. 이 때 로라는 마을에서는 좀 떨어진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 속에서 생활했다. 이 때는 대체로 양식 걱정 없이 그야말로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했다. 아빠는 사슴을 잡아와서 겨우내 먹을 훈제고기를 만들고, 엄마는 옥수수 알갱이를 돼지기름에 튀겨주었다. 마차를 타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서 노래와 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등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로라네 식구의 삶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무려 7개월간이나 내린 엄청난 폭설로 인해 준비해둔 식량이 바닥나 다섯 식구가 굶게 되는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가 이웃집에 양식을 구걸하러 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빚을 내 통나무집을 지어놓고 가을에 밀을 수확하면 빚도 청산하고 딸들에게 예쁜 구두도 사주고 설탕도 사서 맛있는 저녁도 먹겠다고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초원을 까맣게 덮어버릴 정도의 메뚜기 떼가 몰려와서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치워 버려 수확에 대한 꿈을 깡그리 앗아가는 절망적인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가장 큰 괴로움은 로라의 언니인 메리가 실명하게 된 것이었다. 공부하기 좋아하고 언제나 모범적이었던 메리의 실명은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로라네 가족은 주저앉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희망을 발견해냈고 명랑한 웃음을 되찾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메리에게 가족들이 돈을 벌어서 맹인 학교에 보내 배움의 기회를 갖게 하려는 꿈을 가졌다. 당시 로라네 형편으로는 무리한 일이었다.

로라는 언니를 학교에 보내기 위한 돈을 벌려고 괴팍한 아줌마 밑에서 바느질을 돕느라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모습은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가족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책

이 책의 진가는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누나들도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을 희생했는데 미국도 별로 다르지가 않았다. 로라는 교사라는 직업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교사가 된 것은 많은 돈을 벌어 실명한 언니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로라네는 가족간에 정이 돈독했다. 자신의 행복보다는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읍내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나갔다 돌아올 때는 꼭 어린 딸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 과자 등을 사왔다. 딸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 가슴 설레며 선물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어린 딸들이 심심해하면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바이올린도 켜주면서 언제나 딸들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엄격한 벌을 내리는 걸 보면서 정말 아버지다운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는 무능하더라도 사랑이 많으면 충분히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로라의 엄마와 아버지를 통해서 배웠다. 로라가 나중에 스테디셀러를 내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대체적으로 명랑하고 밝고 따뜻한 톤을 유지하는데, 이런 감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바이올린 소리와 엄마의 애정이 담긴 교육에 있었다.

<초원의 집>은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어렸을 때 느꼈던 낭만 적인 느낌을 확인하려고 책을 빌려와 읽었는데 낭만에 대한 갈증도 해소하면서 ‘훌륭한 부모’의 모범 답을 보면서 부모로서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대체적으로 행복한 순간을 많이 그리고 있고, 따뜻한 마음씨가 글자 사이사이에 녹아있기에 읽는 동안 무척 행복해지는 그런 책이었다.

덧붙이는 글 | <초원의 집>(전9권)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스 그림/ 김석희 옮김/ 비룡소

덧붙이는 글 <초원의 집>(전9권)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스 그림/ 김석희 옮김/ 비룡소

초원의 집 1 - 큰 숲 속의 작은 집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비룡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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