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 닝안현에 발해 수도 상경용천부 유적지의 안내판. '당대 발해 유적'이라고 해 발해가 당나라에 속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4년 9월 촬영했다.오마이뉴스 김태경
지난 2004년 '동북공정' 논란이 벌어진지 2년만에 다시 격론이 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의 양상은 다르다. 2004년에는 동북공정의 의도와 목적, 우리의 대응 방안 등 주로 중국 쪽이 '타깃'이었으나, 이번에는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동북공정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노무현 정부가 친중 반일 정책에 따라 고구려연구재단을 해체하고 동북아연구재단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은 정치적 양상으로 번졌다. 과연 어디까지가 타당한 문제제기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쟁점별로 정리해봤다.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이번 논쟁의 발단은 지난 4일 KBS 보도다. KBS는 "지난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해왔던 동북공정의 실체가 KBS의 취재로 처음 확인됐다"며 "고조선에서 발해까지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등 우리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왜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는 동북공정 추진 주체인 중국 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최근 출간한 '발해국사'라는 책을 그 사례로 들면서 "말갈족이 발해 건국의 주도세력이며 발해 초기 '말갈'을 정식국호로 채택했다고 돼 있다, 또 발해국이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나라의 일개 지방조직에 불과한 지방민족정권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고조선부터 발해사까지 중국사 편입이 최초로 확인됐다는 것이 KBS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어리둥절하다. 중국이 발해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킨 것은 이미 1980년대부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사에서 부정하는 기자조선을 중국이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면서 한국사의 시초로 보는 것 역시 이미 널리 알려진 견해다.
그런데 분위기가 확 달아오른 것은 중국이 백두산 공정을 실시하고 있음이 알려진 뒤에 나온 보도 때문으로 보인다.
단 주목되는 것은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발해국사' 등의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4년 8월 이른바 한-중 5개항 합의에 대한 위반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대응 미흡
이 때문에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외교통상부가 문제였다는 비판이 많다.
고구려연구재단 출신 학자인 A씨는 "고구려 수도였던 지안 박물관의 머릿돌에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아직도 안치웠다"며 "그런데도 외교통상부는 지방 정부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중국 중앙 정부의 평소 논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04년 10월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역사를 빼앗기면 미래는 없다'는 28쪽짜리 소책자를 배포하려 했으나, 당시 외교부가 제동을 건 것도 한 사례다.
청와대는 애초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해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외교부 산하에 두려고 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상대국과 분쟁을 꺼리는 조직이라서 안된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결국 교육부 산하로 가게 됐다.
그러나 정부 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도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최근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했다. 그러나 2004년 8월 국회에 만들어진 '중국의 고구려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는 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를 놓고 여야간 몇개월 동안 싸움만 벌였다. 결국 고구려특위는 별 다른 활동도 하지못하고 올해 초 기한을 연장하지 못해 자동 종료됐다.
정부는 현재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발표한 책자라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기 전에는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다. 특히 발해사나 기자조선의 경우 국내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많아 이를 왜곡했다고 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힘들다"라는 입장이다.
이에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국무원 산하인데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발해사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든 것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한규철 경성대 교수는 "발해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는 주장은 일부 국내 학자들 사이에도 있다"며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인이라는 등식 자체가 일본 학자들의 견해인데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해사 왜곡에 대해 중국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기 전에 국내 이견부터 해소해야하는 것이다.
중국 안에 있는 발해 유적지에 대한 한중 공동 조사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취지는 좋으나 현실성은 거의 없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 1962년 발해 유적에 대한 공동 조사를 했었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공동조사 결과를 발표해버린데다 '조선전사' 등에서 발해를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로 강조하면서 북중 합동 조사는 다시 이뤄지지 않았다. 북-중간에도 이러한데 한-중간에 발해유적 공동조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고구려 연구재단 공과 논란
지난 7일 김정배 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역사 전쟁을 치르는 중에 '고구려'라는 간판을 쉽게 내린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며 "그나마 고구려연구재단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 이후 이제서야 북방사(北方史) 연구가 제대로 시작된 것인데, 구심점이 없어져 연구의 탄력이 없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의 제목은 "정부가 고구려재단 해산하라 1년 전부터 압력"이라고 되어있다. 정부가 고구려연구재단을 해체한 것 자체가 중국을 의식해 동북 공정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처럼 인식을 심어줬다. 더구나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 통합한 동북아연구재단 지도부가 일본 전문가로 채워지면서 현 정권의 '친중반일' 정책의 발로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고구려연구재단에 대한 평가는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엇갈린다.
고구려연구재단을 좋게 평가하는 쪽은 열악한 환경에서 90권의 책을 내는 등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한다. 또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발해 유적 발굴, 북한과 공동으로 북한 지역의 고구려 고분 조사, 중국 사회과학원과의 공동 학술 토론회 등의 성과도 거론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관련 학자인 B씨는 "고구려연구재단은 자기가 혼자 다 한다는 생각으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다른 학계 인사들과의 교류가 차단됐다"며 "90권의 책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고 재탕·삼탕이 대부분"이라고 혹평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순수 학술 기관임을 강조했다. 정책 기능을 갖출 경우 정치에 학문이 종속될 수 있으며, 정부 기관으로서 인식되어 국제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일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고구려 연구재단은 한 해 60억원의 예산을 쓰면서도 현실적인 대처 능력이 거의 없었다"며 "차라리 이 돈으로 관련 전문가들에게 프로젝트를 맡겼으면 더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 수립 기능이 없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 논란
고구려 연구재단은 지난 2004년 3월 설립됐다. 그러나 이 재단의 성격과 임무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큰 견해차가 있었다.
한쪽은 일단 고구려에 집중해야 하니 당연히 이름이 '고구려'가 들어가야 하며 정부와 독립된 순수 학술 연구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이 정치에 종속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또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북한과의 학술 교류, 중국 사회과학원과의 토론회 등도 원할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관련 법을 제정해 법적 기구로 출범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연구재단이라는 '재단'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다른 쪽은 동북공정은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역사 왜곡을 꾀하고 있으니 북방사·간도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동북공정은 단지 과거사 왜곡이 아닌 유사시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에서 추진되는 것이니 만큼 정책 수립 기능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돈을 받으면서 민간기구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결국 고구려연구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고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북방사 연구 기능도 갖췄으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 논란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또다른 정신문화 연구원"
고구려연구재단의 상임이사를 지냈던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동북아연구재단 자체가 일본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며 "이는 이사장과 사무총장이 일본 전문가인데서도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한국사 왜곡이 문제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이사장은 한국사 전공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는 "더구나 동북아역사재단은 공무원들이 주도하는데다 이사장 등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있다"며 "이는 또 다른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드는 것으로 정부가 역사를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원래는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고구려연구센터를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연구원들도 다 흩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즉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원 20명 가운데 최소 4명 정도가 행정직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을 주장했던 인사들은 "고구려연구재단이 해체된 것은 전망과 비전을 갖지 못했던 조직의 자업자득"이라며 "청와대 지시로 동북아역사재단이 급조된 것은 잘못이지만, 이제는 이 조직이 잘 될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지 비판만 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역사학자인 박 아무개 교수는 "김정배 이사장의 인터뷰를 보고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내 주변에는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은 정부와 함께 김 이사장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고구려연구재단 사람들은 포로?
이 와중에 고구려연구재단에 있다가 동북아연구재단으로 간 연구원들의 처우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7일 <문화일보> 기사에 나온 고구려연구재단 출신 한 학계인사는 "고구려재단 연구인력 20명 가운데 10명이 엉뚱한 행정직으로 갔다"며 "이게 문제가 없는 인사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심지어 "동북아역사재단을 주도하는 교육부 관료들이 고구려연구재단 출신 연구원들을 포로 취급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고구려연구재단에 몸을 담았던 C씨는 "포로라고 한 표현은 심하다"면서도 "그러나 고구려연구재단 출신 직원들의 가슴에 멍에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애초 동북아연구재단은 고구려연구재단 인력을 모두 승계한다고 했으나 각자 심사를 거쳐 다시 들어갔다. 또 4명이 홍보실로 발령이 났는데 이는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삶은 끝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C씨는 "2년동안 열심히 했는데 연구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도 크다"며 "정부가 이런식으로 조직을 마음대로 해체하면 나중에 학자들이 과연 정부 말을 믿고 어떤 연구조직에 몸을 담을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구려연구재단 출신으로 동북아연구재단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D씨는 좀 다르게 얘기했다.
D씨는 "급하게 통합되는 과정에서 연구실 환경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연구원 신분의 격도 좀 낮아져 일부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내가 볼 때 앞으로 동북아연구재단에서의 연구활동은 이전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D씨는 "고구려연구재단은 일반 연구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 였다"며 "지금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비판보다는 어떻게 연구와 정책수립 역량을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원 E씨는 "분위기가 고구려연구재단 때와 다르지만 일부 언론이 보도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동북아연구재단이 출범하지도 않았는데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은 너무 앞선 느낌"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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