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59] 진범

등록 2006.09.11 20:23수정 2006.09.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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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꽃 이름 중에서는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준 것들이 있다. 동물들과 유사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강아지풀'이다.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강아지들이 꼬리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꼬리는 자기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가우면 그 반가움을 숨길 수 없고, 두려우면 그 두려움을 숨길 수 없는 것이 강아지 꼬리다. 그 속내를 숨길 줄 아는 영특함이 있었다면 어쩌면 인간과 함께 공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아지풀 외에도 노루오줌, 노루귀, 범꼬리, 꿩의다리, 매발톱 등 동물의 이름이 있는 꽃들이 많다. 그런 이름들과 연관을 지으면서 '진범'은 '진짜호랑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깊은 산 숲 속 그늘에서 자란다는 진범, 범을 만나러 깊은 산 계곡을 헤치며 올라갔다.

김민수
그러나 어디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야 할까 잘 알지를 못하겠다. 유독성 식물이니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관련이 있는가. 아니면 한방에서 뿌리가 진통제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호랑이뼈로 만들었다는 무슨 연고도 진통제로 많이 사용되니 거기에 연관성이 있는가 했다.

그러나 진범의 한자어가 '秦凡'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상상력이 소설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상상력은 즐거운 상상력이다.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할 현실의 문제들을 가지고 삼류소설을 쓰는 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혼자만의 상상이야 뭐 그리 큼 흠이 되지는 않으리라.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난다는 백로가 지나서인지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반소매 차림으로 나선 꽃산행길, 제법 숨차게 올라가는데도 강원도 심산유곡의 온도는 서늘함을 느낄 정도로 차가웠다.


김민수
지난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계곡에는 역력했다. 뿌리째 뽑힌 나무들과 휩쓸려 내려간 흔적들과 사라진 길들은 방문자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철이나마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휴식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여기저기 붉게 익어가는 오미자는 봉투 같은 것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했으며, 이틀째 더부룩하던 속은 자연산 더덕 두 뿌리로 해결을 했다.


이렇게 홀로 길도 없는 산 속에서 헤맬 때 갖는 소망, 그것은 일종의 특종심리일 것이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나고 싶은 마음, 나만의 비밀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싶어 홀로 산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망과 현실을 다른 법, 길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물봉선과 끝물의 짚신나물, 봄에 한창이었을 괭이눈과 이끼류의 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날은 자연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지금 그 자리에 있음에 행복해 하면 그만이다.

김민수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꽃에 대한 집착보다는 내 삶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하게 된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 내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들을 생각하며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그늘진 숲에 가을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때 보이지 않던 꽃이 눈에 들어온다. 진범이었다. 보랏빛보다는 흰진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빛이 부족하면 여간해서 카메라에 꽃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한 줄기 빛은 눈으로 보지 못하던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늘진 숲이라 그런지 줄기가 늘어지다 못해 습한 바위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꽃을 피우는 그곳은 꼿꼿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다.

진범은 유독성 식물이며 한국 특산식물이다. 그러나 그 독도 잘 다스리면 약이 된다. 한방에서 중풍, 냉풍, 이뇨 및 강심작용 외에도 많은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약도 잘못 다스리면 독이 되는 법이다. 중용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민수
깊은 산 그늘진 곳, 이끼 낀 바위, 햇살 한 줌
그가 살아가는 곳에 필요한 것이다.
가을바람, 바람에 부디끼는 나뭇잎 소리, 새 소리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다 갖지 못해도 다 가진 양 옹골차게 피어나는 꽃,
보아주는 이 없어도 가장 예쁘게 피어나야 꽃이다.
꺾이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불어야 꽃답게 피어나고,
타버리지 않을 정도로 목이 말라야 꽃은 꽃답게 피어난다.
어디에 피어도 꽃인 이유는 그가 꽃이기 때문이듯,
어디에 살아도 사람인 이유는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꽃은 꽃다워야 꽃이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그 누구도 꽃의 꽃됨을 사람의 사람됨을 꺾을 수는 없다.

- 자작시, '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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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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