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틀 선생과 동물 가족도서출판 길벗
책은 원숭이들이 몹쓸 전염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둘리틀 선생이 동물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아프리카를 다녀온 모험담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둘리틀 선생과 함께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는 동물친구들은 저마다 개성 있고 나름의 특기를 지닌 귀엽고 정겨운 친구들입니다.
사람의 말과 동물의 말을 다 할 줄 알며 둘리틀에게 동물의 말을 가르쳐주는 재치박사 앵무새 '폴리네시아', 둘리틀 집안의 관리인이자 냄새를 잘 맡는 잡종견 '지프', 가정부 노릇을 마다 않는 살림꾼 오리 '다브다브', 꾀 많고 귀가 밝아 머리 쓸어내리는 미세한 소리로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해내는 올빼미 '투투', 먹는 데 관심 많은 애교덩어리 돼지 '가브가브', 둘리틀 선생이 떠돌이 악사에게서 구해낸 여행의 안내자 원숭이 '치치', 아프리카 동물들이 준 선물이자 머리가 두 개인 진귀한 '푸시미풀유' 등이 그들입니다.
월등하면 행복할까
둘리틀 선생은 원래 훌륭한 의사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살던 '무너미' 마을에서는 "신사 모자를 쓴 선생님이 지나가면 모두가 '야아, 선생님이 저기 가시네.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지'하고 칭찬하곤" 했습니다. 돈도 제법 벌었던 선생님은 동물을 매우 좋아해 집안이 동물로 꽉 찼습니다. 그러자 아픈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선생님은 곧 가난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은 이유는 동물로 꽉 찬 둘리틀 선생님의 집이 싫었기 때문이지요. 류머티즘을 고치러 찾아왔다가, 고슴도치가 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의자에 앉았던 한 할머니는 그 후로는 15km나 떨어진 황소 마을 의사에게 치료 받으러 다녔지요. 둘리틀 선생의 여동생인 사라 아줌마는 악어가 집안을 기어 다니는데 어떤 환자가 오겠느냐며 불평을 털어놓지요.
그 악어는 둘리틀 선생이 악독한 서커스단에서 구해낸 착한 악어로 절대 다른 동물이나 사람을 물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주는 먹이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착한 악어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악어가 자신과 자신의 가축을 해코지하지 않을까 지레 겁먹었습니다. 동물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는 걸 모르는 욕심쟁이 인간의 선입견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리석기 짝이 없지요.
사람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며 직립보행으로 도구를 만들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 문명을 창조했다고 으스댑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내고 창조한 기술과 제도의 이면엔 우리 자신을 가두고 재앙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마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둘리틀 선생님이 "돈 많은 손님보단 동물들을 훨씬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사자를 비롯한 맹수들도 배부를 땐 사냥하지 않습니다. 초원의 동물들은 한 번에 모든 풀을 뜯어 먹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거나 귀한 때를 대비해 남겨 두는 것을 잊지 않지요.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없는 사람의 속곳 주머니까지 털어내려 안간힘을 씁니다. 욕심은 끝이 없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협잡과 폭력을 서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폭력은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문명을 창조했지만, 본래의 선함을 잃었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구가하는 대신 정신의 빈곤과 타락을 그 대가로 지불하였습니다. 편리와 효율을 얻는 대신 자연의 황폐를 경험합니다. 문명 발달은 인류가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연의 재앙'이라는 철길을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상황을 낳았습니다.
둘리틀과 동물들이 던지는 유쾌한 경고
둘리틀 선생은 철모르는 문명을 향해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인간에게만 언어가 있는 듯이 젠체하는 우리에게, 동물도 말을 하고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귀를 닫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일깨웁니다. 둘리틀 선생의 동물친구들은 하찮은 듯이 보이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이 한 가지씩은 있습니다. 둘리틀 선생이 사람친구와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면 그들은 아프리카에 이르기도 전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