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젊은이가 티셔츠를 팔고 있다. '9·11에 대한 진실'이라는 홈피 주소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9·11이 음모라고 주장하는 그룹의 멤버들인 모양이다. 이들은 "9·11이 진짜 테러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하승창
그 옆에서 두 젊은이가 티셔츠를 팔고 있다. '9·11에 대한 진실'이라는 홈피 주소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9·11이 음모라고 주장하는 그룹의 멤버들인 모양이다. '왜 이런 홈피를 운영하느냐'고 물었더니 "9·11이 진짜 테러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래서 9·11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철망이 처져있는 앞쪽으로 가보았다. 여기는 주로 추모객과 관광객이 몰려 있고, 당시 현장 사진들이 걸려있다. 한 쪽에는 누군가의 작품으로 9·11 당시 숨진 사람들의 사진을 무역센터 건물에 담은 인물사진들을 빼곡이 모아 만든 것이 그들을 기리고 있다.
갑자기 길건너편이 소란스러워졌다. 검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여러 구호가 보인다. 'Investigation 9·11'(9·11을 조사하라)이 대표구호인 모양이다. 9·11 테러에 관한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Loose Change)> 2번째 판을 CD로 나누어 주고 있다.
길 건너편에 탈레반을 규탄하고, 미국의 영광을 외치는 사람들과 이들은 어떻게 될까? 한동안 행진을 계속하던 이들이 흩어지자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짧은 영어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9.11현장은 어느새 아침 무렵의 추모와 테러규탄의 분위기에서 급속히 논쟁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 경찰의 제지가 있기 전까진 그들을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 실제로 맞은 편 빌딩에 거대한 성조기가 걸려 있기는 했지만, 5년 전 9·11 당시의 일방적 국수주의 분위기가 압도하던(5년 전 9·11 당시 나는 워싱턴에 있었고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펜타곤을 지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보았던 수많은 성조기의 물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9·11이 음모라는 <루스체인지>가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에 적합한 사실들만을 추려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왜 이런 가설이 힘을 얻어 애꿎게 죽어 간 사람들의 이름이 애절하게 불리우고 있는 현장에서 오히려 추모의 열기와 맞설 만큼 울림을 갖는 것일까? 어제가 일요일이라 부시가 참여하는 행사가 이곳에서 있었다고 하는데, 어제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모든 음모론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그 행위로 인해 부당하게 정치적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과 집단이 있고, 반면에 그로 인해 고통받거나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9·11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미국과 전세계의 사람들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에 대해 그것이 갖는 부당한 정치적 입장을 고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국수주의 물결은 사라지고... 5년 만에 뒤바뀐 상황
5년 후 9·11 테러일, 부시의 전쟁정책이 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진 사실조차 음모로 만들고 애꿎게 죽어 간 사람들마저 제대로 추모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공격당한 미국이 단결해야 한다는 5년 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에 기초한 조사요구는 음모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시의 대외정책에 대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에 대한 반기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있는 공간에서도 뚜렷하게 다른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부시는 그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단 5년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