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 2004년 5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덕영 씨.오마이뉴스 김태경
"나를 간첩으로 기무사에 제보한 ROTC 동기생 2명, 기무사 및 경찰 조사관, 검사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 무엇보다 5월 8일 가족들 앞에서 나를 체포한 것은 유무죄 여부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가족들에게 영원한 상처로 남아있다. 지금도 5월 8일만 되면 가족들에게 끔찍한 일로 기억되어 있다. 이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지난 2002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가 2004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덕영씨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동권이 대학가를 지배하던 80년대 초반 나는 시위에 단 한번도 참여하지도 않았고 ROTC를 했다, 친구들로부터 '극우에 가깝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며 "(이런 나를 간첩으로 만든)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이득을 본 쪽은 국가였고 피해를 본 쪽은 힘없는 국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 나를 간첩으로 기무사에 제보했던 정 아무개·배 아무개 중령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씨는 일본 공안기관이 한국 정보기관의 일본내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한 이유에 대해 "나를 거물급 간첩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이는 한국 정보기관이 자신을 거물급 간첩이라고 포장해 일본 공안기관의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은 안덕영씨와의 인터뷰 전문.
"어버이날 딸 앞에서 수갑찬 기억, 잊을 수가 없다"
- 오늘 <오마이뉴스>에 '일본 공안당국, 한국 간첩조작 지원' 기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또 나를 이렇게 만든 ROTC 동기생 정 아무개·배 아무개 중령(사건 당시 소령), 나를 조사했던 검사, 국군기무사 사령관 및 경찰관들로부터 사과를 받고싶다.
연쇄 살인범도 인권 보호차원에서 얼굴을 가리고 현장 검증을 한다. 그런데 나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가족들 앞에서 수갑을 채워서 끌고간 것은 무참한 행동이다. 이에 대해 꼭 사과를 받고 싶다."
- 이 사건은 ROTC 동기생으로 당시 기무사에 근무하고 있던 정 아무개 중령이 제보해서 시작됐다는데…
"정 중령은 1994년부터 나를 의심했고, 1999년 3월18일 기무사에 제보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 정 중령은 학생중앙군사학교(문무대)에서 같이 근무했고 배 중령은 서울대 학군단 동기생이다. 아주 절친했던 사이다. 절친했던 친구가 만약 간첩으로 의심됐다면 자수를 권유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 그가 제보를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진급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했다. 기무사는 워낙 진급 경쟁이 치열한데 특히 ROTC 출신은 불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김대중 정부 들어 간첩을 체포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국정원·기무사·경찰 보안과 등 공안 기관은 존재하는데 간첩을 못잡고 있으니 무엇인가 사건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공권력에 의한 간첩조작 미수사건이다."
- 실제 진급했나?
"정 중령은 물론이고 수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1계급 특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는 대법원 판결까지 봐야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1심에서 유죄가 나오면 진급한다고 들었다. "
- 그런데 2002년 체포된 날이 어버이날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가족들과 함께 외출을 했는데…, 나는 지명수배자도 아니었고 흉기를 들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도망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버이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 앞에서 수갑을 채워서 끌고갔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비자도 없는데 미국방문? 일기의 공백이 '입북'의 증거였다"
- 2004년 5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은 말 자체가 안 된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이나 나를 미행하고 도청했으면서도 기무사가 내놓은 증거가 엉터리다. 미국 비자도 없었는데 미국 방문을 했다고 되어있다. 중국에 간 적도 없는데 중국을 방문했다고 되어있다. 금강산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 입북했다고 되어있다. 심지어 가족사항도 틀린다."
- 또 다른 것은?
"그들은 증거가 없으니 무조건 자백하라고 했다. 김일성 유일사상 교육을 받았다며 어디서 총기를 탈취해 어떤 요인 암살을 꾀했는지 등을 자백하라고 윽박질렀다.
1997년에 최정남 부부 간첩이 거제도에 침투했다. 그런데 기무사 수사관은 이전에 내가 가족들과 여행을 빙자해 거제도 일대 해안 사진을 찍어 북한에 보냈고, 이를 이용해 부부 간첩이 침투했다고 다그쳤다.
심지어 그들은 내가 북한에 다녀온 결정적 증거가 확보됐다며 자백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결정적 증거란게 내가 20년 동안 쓴 일기다. 일기에 7일간 공백이 있었는데 이를 북한에 다녀온 행적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기무사가 유력하게 꼽은 것은 일본 유학 때 조선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장학회는 민단과 조총련이 함께 운영한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것으로 알고있다. 일본 국공립 대학에서 유학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장학금을 받았다."
- 일본에 자주 왔다갔다 한 이유는?
"1990~1992년 한 회사의 일본 주재원으로 생활했다. 또 이후 약 2년동안 일본 오사카에 있는 한 기획회사에서 근무하면서 1주일에 두번씩 한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그 때 정 중령은 내가 근무하던 기획회사의 사장과 부장 등을 자기 부대로 초청해 총도 쏴볼 수 있게 해줬다."
- 조사 받으면서 고문은 받지 않았나?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 단 잠을 안 재웠는데, 이것도 고문은 고문이다. 조사 장소는 경찰청 보안국이었고 조사관은 기무사 소속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칼기 폭파범 김현희도 범행을 자백했기 때문에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 네가 간첩임을 자백한다면 내일이라도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다."
"친구들이 '너는 극우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됐냐'고"
- 운동권 세력이 컸던 1980년대에는 사실 ROTC를 하는 대학생에 대해 안 좋게 보는 분위기도 있었다.
"나는 당시 학생 시위에 단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물론 학생운동도 안했다. 나는 서울대 미대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념이나 사상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친구들은 '너는 사실상 극우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혀를 찼다."
- 1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지난 2003년 1월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82일 만에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집행 유예도 유죄는 유죄다. 그러나 간첩 혐의자에게 집행유예는 이례적이었다. 따라서 그 때 무죄나 이미 다름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2004년 5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정 중령을 만났나?
"배 중령은 피해서 못 만났고 정 중령은 만났다. 이 친구는 아직도 "증거가 없어서 네가 무죄가 되었으나 간첩이 맞다, 그러니 자수하라"고 말한다."
-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국가기관에 의한 엉터리 수사로 엄청난 피해를 봤으니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물론 정 중령과 배 중령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 왜 일본 공안 기관이 한국 공안기관을 지원했을까?
"일본 공안인력이 매일 5명씩이나 지원된 줄은 몰랐다. 아마도 나를 거물급 간첩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한국 정보기관이 나를 거물급으로 포장해서 지원을 부탁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올 정도면 관련 기관은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은 공권력을 추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2002년에도 날조됐는데, 과거엔 어땠겠나"
- 국가보안법에 대한 생각은?
"국가보안법이 생겨서 국가가 정말 국민을 위해서 얼마나 일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국민을 탄압하기 위한 권위주의적인 법이 아니었나 싶다. 국가 보안법으로 인해 이득을 본 쪽은 국가였고 피해를 본 쪽은 힘 없는 국민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에도 날조된 사건에 의해 내가 구속되었는데 과거에는 얼마나 심했겠나? 정말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인데 최종 판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원래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빨리 판결을 내려달라고 편지를 수십번 보냈는데 아직 답변이 없다."
- 꼭 하고싶은 말은?
"앞에서 말했듯 나를 간첩으로 제보한 동기생 2명, 기무사 및 경찰 조사관, 검사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 무엇보다 5월 8일 가족들 앞에서 체포한 것에 대해서는 나의 유무죄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가족들에게 영원한 상처로 남아있다. 지금도 5월8일만 되면 가족들에게 끔찍한 일로 기억되어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사과를 받고 싶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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