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잃은 눈으로 찍은 사진들

감으로 찍는 나만의 사진들

등록 2006.09.19 11:30수정 2006.09.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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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맨드라미

맨드라미 ⓒ 박준규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것에 흥미가 붙었다. 내가 찍히는 것은 싫어하지만 남들을 찍거나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 속에 담는 일이 아주 즐거운 취미로 다가온 것이다.


충동구매에 빠져 고민하다

각종 잡지나 영화포스터 또는 최근 들어 인터넷 속까지 파고든 일명 작품사진들. 이미 사진 찍는 것에 흥미가 붙은 나에겐 이 모든 것들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눈요기거리가 되고 4년 전 선물 받은 200만 화소짜리 디카는 어딜 가나 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휴대폰은 깜빡하고 놓고 가는 한이 있어도 디카는 거의 챙겨 외출을 할 만큼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집착에 가까울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올 늦봄까지만 해도 각 홈쇼핑이나 인터넷 등에서 광고하는 디카를 봐도 별 감흥도 받지 않을 정도였고 얼마 전에 200만 화소를 비롯해 오래된 카메라를 아껴 오래 쓰자는 기사도 쓸 만큼 사진은 좋아했으나 새로운 디카에는 별 관심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문득, 내 디카의 한계를 알았다. 솔직히 일상적인 사진을 찍는 데는 200만 화소만으로 전혀 문제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보고 탐내하던 사진들과 비슷하게라도 찍기 위해선 좀 더 나은 디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완전히 충동구매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다.

a 무엇일까요? ^^

무엇일까요? ^^ ⓒ 박준규


끝내 새 디카를 손에 넣어야 했던 변명


그 유혹에 더불어 요즘 고급 디카들은 ‘손떨림보정’이라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손·발이 불편한 내가 사진을 찍는 데 있어 최상의 구입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기능을 탑재한 맘에 드는 디카들은 고가(高價)를 고수하고 있었으며 저렴한 제품에 탑재된 손떨림보정은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해 내 높은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 홈쇼핑에서 고급형 하이엔드급 디지털카메라를 광고하는 것을 봤다. 이후 또 며칠을 인터넷을 뒤지며 각종 제품들의 가격이며 성능, 기능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는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구입하기 적당한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유한 금액으로 기준했을 때 며칠 전 홈쇼핑서 광고한 제품이 그중 나은 제품.


하지만 그 제품엔 내가 바라던 손떨림보정 기능이 없었다. 단지 화소나 CCD 정도가 내가 바라던 것에 만족되었을 뿐 그렇게도 찾던 손떨림보정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동안 새 디카에 몸이 달은 터인지라 끝내 주문을 하고 말았다.

a 이른 단풍

이른 단풍 ⓒ 박준규


구입하자마자 되팔려 했던 이유

좋은 디카를 손에 들고 첫 촬영을 나섰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찍을 수가 없었다. 기존 디카보다 그립감(손잡이)도 좋고 크기도 적당해 안정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찍을 때마다 설정해 줘야 하는 것도 많고 처음이라 조작도 서툴러 땀만 줄줄 흘렀다.

게다가 이 새 디카는 후면 LCD로 보는 것보단 일명 뷰파인더로 보며 초점이나 노출값, 셔터값, 조리개값 등을 세밀하게 맞출 수 있는 카메라여서 한 손으로 들고 눈에 대고 또 한 손으로 각 셋팅 값을 맞추어야 한다. 손이 불편한 내겐 가능하지 않은 고난도(?) 기술을 요하고 있었다.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몇 달간 글 써서 조금씩 모은 원고료 톡톡 털어 구입한 디카 인데 앞으로 일이 깜깜했다. 오죽했으면 구입한 지 하루만에 해당 디카 모임인 카페에 가입해 그곳에서 운영하는 알뜰시장에 내놓기까지 했었을까? 다행히 그때 그곳 회원들의 격려로 판매를 접고 내게 맞는 디카로 만들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새 디카를 사용하기 위해선 필수품이 있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삼각대. 그립감이 아무리 좋고 카메라 몸체가 크면 무엇하나! 내가 들기엔 무겁고 힘겨운 것을. 해서 삼각대는 기본으로 들고 다녀야 할 처지가 됐다. 그래도 손떨림보정 없는 제품이다 보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남 몰래 자위도 한번하면서 바늘과 실처럼 같이 들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a 석양

석양 ⓒ 박준규


초점 없는 눈으로 찍어야 하는 새 디카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앞에 놓였다. 위에도 잠깐 말을 했듯이 이 디카는 LCD화면이 아닌 뷰파인더를 통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확한데 안경을 쓰고 있는 내겐 그리 반갑지 않은 촬영법이다. 어쩔 수 없이 안경을 벗고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면 완전 ‘떨리는 세상’이 된다.

그렇다. 내 눈은 심한 난시다. 안경을 벗으면 각 피사체들의 초점이 맞지 않아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쉽게 말해 안경 벗고는 19인치 모니터로도 웬만한 작은 글씨들은 읽을 수 없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런 눈으로 한쪽을 감고 한 쪽 눈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세상을 본다 생각해 보라. 거의 감으로 각 셋팅과 초점을 맞추며 찍어야 할 상황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라고 했던가?

그렇게 초점 맞지 않는 눈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페 회원들의 따뜻한 격려는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간혹 블로그에 와서 사진에 대한 댓글이라도 남겨주고 갈 때면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고 비록 좋지 않은 불량식품 같은 몸이지만 노력해서 좀 더 나은 사진을 찍어 나만의 그 어떤 공간을 채워야겠다는 힘이 솟는다.

내 입으로 ‘오래된 디카 아껴 쓰자’ 해놓고 충동구매에 현혹돼 원고료 털어가며 새 디카를 구입해 떳떳하진 못하지만, 그만큼 좋은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보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또 한 번의 자위를 하며 진짝 작품 같은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내공을 쌓고 있다.

a 거미

거미 ⓒ 박준규


a 남이섬 뱃터 야경

남이섬 뱃터 야경 ⓒ 박준규


a 이른 석양

이른 석양 ⓒ 박준규


a 잠자리

잠자리 ⓒ 박준규


a 공생

공생 ⓒ 박준규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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