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들을 심판한 겁니다"

[전대협 세대를 찾아서 ①] 김종원 'KINO2(주)' 대표

등록 2006.09.26 10:21수정 2007.01.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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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동우회(회장 : 윤진호)는 6월 항쟁 및 전대협 20주기를 맞아 기획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우회측은 "지난 시절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웠던 전대협 세대들의 현재 고민과 미래의 꿈을 청취하고 이를 동시대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연속 인터뷰를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필자 주>

대담 : 윤진호 전대협 동우회장, 안진걸 KYC(한국청년연합회) 실행위원
정리 : 안진걸·강윤중(전대협동우회 사무국장)


a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 강윤중

최근 강남의 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김종원(40)씨를 만났다.

연세대 85학번으로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이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선전국장을 끝으로 사회에 진출했다. 그리고는 <말>지 기자를 거쳐 현재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운동권들이 영화감독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영화사를 차린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김종원씨는 그게 특이한 이력이 아니라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늘 대중과 함께 소통하려고 한,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선전선동' 하려고 했던 삶과 운동의 철학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궤적"이란다. 듣고 보니 참 그럴싸하다. 영화보다 사회적 메시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기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가 요즘 만들고 있는 영화는 <천년학>. 영화에 대한 설명보다는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빠르겠다. 영화 <천년학>은 지난해 12월 제작이 중단되는 큰 고비를 겪었다. 그때 영화 제작이 계속될 수 있도록 뛰어든 영화사가 바로 김종원씨가 대표로 있는 '영화사 KINO2(주)'이다.

지난 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듯 그는 위기에 처한 거장을 위해 뛰어든 것이다. 현재 아무런 문제없이 영화 <천년학> 촬영이 한창이라고 설명한 그의 표정에서 영화인으로서의 긍지가 물씬 느껴졌다.


5·31선거, 우리가 우리를 심판한 것

영화인으로서 고민 외에 그에게 또 하나의 큰 고민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모순 많은 분단 한국사회를 개혁하는 일'이다. 한 번 운동권은 영원한 운동권인 걸까? 하는 일은 늘 변해왔지만,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영화인으로서도 '5·18 광주'를 제대로 다룬 영화, 7천만 겨레가 공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남북합작영화'를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보통' 영화인은 아닌 것이다.

김종원씨를 포함해 요즘 '5·18세대'들은 고민이 많아 보인다(80년대 세대, 386세대, 전대협 세대 등등 이들을 부를 수 있는 여러 용어들이 있겠지만, 모두 한계가 있어서 우리는 '5·18세대'라는 말을 붙여보았다. 80년대 거의 모든 사회운동세력은 5.18 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스스로의 운동적 운명'을 깨달았다는 데에서 다른 어떤 용어보다 적절한 용어가 아닐까 감히 주장해본다).

그 고민은 '노무현 정부의 부진'과 '한국사회 개혁 전망의 부재'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한 것이죠."

최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 5·31선거에 대한 평가를 묻자 그가 고심 끝에 한 말이다.

"이 정부는 80년대 민주화·통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고, 이 정부를 가능하게 한 힘도 80년대 세대들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우리들'을 실망시켰는데, 현 정부 역시 80년대 세대의 힘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이라는 점에서 5·31선거 결과는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a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가운데)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왼쪽에는 안진걸 실행위원, 오른쪽에는 윤진호 전대협동우회장이다.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가운데)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왼쪽에는 안진걸 실행위원, 오른쪽에는 윤진호 전대협동우회장이다. ⓒ 강윤중

그렇다면, '우리들의 우리들에 대한 심판'은 2007년 대선에도 계속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는 "대선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5·31선거로 따끔하게 심판했으니 새로운 선택이 또 가능할 것"이라며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했다 해도 5·18세대의 '근원적인 공적(共敵)'인, 수구냉전기득권 세력 한나라당에 다시 권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깊은 실망이 일시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졌지만, 역사적 안목으로 보았을 때 다시 과거 세력에게 정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느껴졌다.

과연 그의 뜻대로 될 것인가. 그가 말한 80년대 세대들은 여전히 혼돈 속에서 고심하고 있고, 노무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2007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다음은 김종원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7천만 겨레가 공감하는 '남북합작영화' 만들고 싶어"

- 회사 이름이 '영화사 KINO2(주)'인데, 폐간한 영화잡지 < KINO >와 연관이 있나?
"맞다. 비록 폐간됐지만 < KINO >의 정신이 '영화사 KINO2(주)'로 이어졌다고 보면된다. 잡지 제목인 < KINO >는 독일어, 러시아어로 '영화, 영화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997년부터 < KINO >에서 회사 대표 겸 발행인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 KINO >는 '영화운동', '영화관객운동' 차원에서 만들어진 잡지이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했다. 당시 영화 잡지들이 청소년물의 연예잡지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조였는데, 내가 일을 그만둔 후 안타깝게 9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 '골수' 학생운동을 하다 어떻게 영화사 대표가 됐나?
"학교 다닐 때부터 대중과 함께 하는 선전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학생회에서 늘 '언론·선전' 관련 일을 했다. 결국 89년도에 전대협 선전국장도 하게 됐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말>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말>지에서 영화·문화 관련 기자 일을 하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영화잡지, 영화사 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선전선동'하려고 했던 삶과 운동의 철학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궤적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대중과 소통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 영화 <천년학>을 찍고 있는데, 어떤가?
"현재 30% 조금 넘게 촬영이 진행됐고 12월에 모든 촬영을 마친다. 그리고 2007년 4, 5월쯤에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서편제>의 연작이고, 이청준 선생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가 원작이다. 전남 장흥과 진도·해남·광양 등 남도 일원에서 찍고 있다.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나에겐 큰 행운이다. '영화사 KINO2(주)'의 첫번째 작품이 <천년학>이다. 첫 작품을 거장과, 그것도 거장의 100번째 영화와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영화 100편을 만든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고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영화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진 장인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인 것이다. 그 일을 내가 함께 하고 있으니 큰 행운 아닌가."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영화인으로서 몇 가지 꿈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제대로 된 '5·18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운동의 영원한 원천인 '광주',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광주'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 제작 중인 80년 광주를 주제로 한 <화려한 휴가>에도 기대를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내가 목격한 '광주'를 직접 다뤄보고 싶다.

또 하나는 '남북합작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남북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아마 그것은 역사물로서 '고구려' 이야기가 어떨까 싶은데, 7천만이 공감하는 '고구려' 관련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7천만 겨레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 아닐까. 통일이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현 정부의 일정한 실패, 준비가 안 된 것이기 때문"

a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 강윤중

- 여전히 운동과 통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광주에서 주욱 자란 나는, 도시의 분위기상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지금도 자주·민주·통일 노선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꿈은 여전히 제대로 된 민족자주정권 수립이라고 생각한다. 또 동시에 분단조국의 통일이고…. 사람들이 그래서 노무현 정부를 지지한 것 아닌가. 미군철수까지는 아니어도 미국에 할 말은 하는 정부, 민족의 통일열망에 기여하는 정부. 그런데 정권 잡은 후에 제대로 안 된 면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실망이 있었던 것 아닐까?"

- 지난 5·31선거 결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나?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한 것이라 봐야 한다. 이 정부는 80년대 민주화·통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고, 이 정부를 가능하게 한 힘도 80년대 세대들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우리들'을 실망시켰는데, 현 정부 역시 80년대 세대의 힘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이라는 점에서 5·31선거 결과는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DJ정부는 우리들의 정권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정, 정부여당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노무현 정부가 '우리들'의 정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80년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배경으로 탄생한, 그런 노무현 정부가 출범 후 순수성을 잃은 면도 있는 것 같고, (한-미관계에서) 남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처럼 못한 것도 있고, 서민들의 기대에 부응 못 한 점도 있고…. 민족자주정권, 참된 보통 시민의 정부를 바랐으나 잘 안 된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선거결과에 폭발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했다', 참 재밌는 이야기다.
"우리들의 몇십년 운동의 성과, 80년대 세대가 사회 곳곳에 진출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것들이 결국 현 정부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제대로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현 정부의 일정한 실패는 그 만큼 준비가 안 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체제 안으로, 권력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대한 벽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

해방 이후부터 한국사회를 지탱해 왔던 거대 시스템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우리 국민의 약 30%는 절대 안 움직인다. 이들은 죽어도 '안정'을 외치는 수구보수라고 말 할 수 있다. 그중에는 일제 때부터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지켜내려는 수구 기득권 세력도 있고, 내가 '광주'를 겪었던 것처럼 6.25 한국전쟁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개혁의 논리로 설득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70%의 지지로 국가운영을 해야 하는 것인데, 전선을 확실하게 긋지 못했다. 70%가 원하는 정책을 확실히 수립하고 집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70%는 수구보수가 아닌 탈냉전평화세력, 뭔가 변화를 바랐던 보통의 서민들인 텐데,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이다."

a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김종원 영화사 KINO2(주) 대표 ⓒ 강윤중

- 그렇다면, '우리들의 심판'은 다음 대선까지 계속 되는가?
"아니다. 5·31선거로 따끔하게 심판했으니, 새로운 선택이 또 가능할 것이다. 우리들이 우리들을 심판했다 해도 5·18세대의 '근원적인 공적(共敵)'인 수구냉전기득권 세력 한나라당에 다시 권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80년대 세대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용서돼도 군대를 동원해 자국민을 학살한 자들, 그리고 그들의 후예들이 반성도 안 하고 버젓이 버티고 있는 정당에 대해서는 용서가 안 된다. 80년대 세대들이 곳곳에 있는데, 한나라당을 찍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80년대 세대뿐만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도 지금과는 나아진 상황으로 변화를 바랄 텐데, 변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수구기득권정치세력에게 다시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80년대 운동세력이 다시 선택받기 위해선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더 깨끗해야 하고, 더 철저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진정 국민대중을 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광주, 내 삶의 방향 결정한 가장 큰 계기"

- 김종원씨 삶에서 '광주'는 정말 의미있는 곳인 것 같은데.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생활하며 중학생 때 80년 5월의 '광주'를 직접 봤다. 그 후 광주의 분위기상 자연스레 고등학생 신분으로 민주화투쟁에도 참여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과학 독서회 등 학생활동도 시작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고등학교 서클 선배(송영길 국회의원)가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고 있던 연세대(경영학과 85학번)를 택했다. 학교와 학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운동'을 자연스럽게, 또 당연히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광주 출신으로 방황도 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주는 것이 참 억울하기도 했고. 그래서 80년 5월을 알리기 위해 사진전시, 비디오 상영하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광주는 내가 자란 곳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 가장 큰 계기였다."

- 학생운동도 열심히 하고, 감옥도 갔다 왔다고 들었다.
"학생운동,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써클식 운동은 잘 안 맞았다. 대중운동이 더 좋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학생회 중심으로 대중과 함께하는 언론·선전 관련 일을 주로 했다. 86년 건대 항쟁은 써클 중심 운동의 결정판이라고 본다. 그래서 모두 대책 없이 검거돼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당시 학생운동가의 80%가 검거되어 각 학교마다 '교사'(운동권 고학번)가 없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었다. 대중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못해서 발생한 학생운동의 한계점이었다. 그런 경험과 반성이 학생운동을 바꾸었고 마침내 87년 6월대항쟁을 가능하게 해 줬던 것이다.

내 경우 87년 학내에 있는 각 언론매체들과 연합해서 '연세대 언론출판협의회(언협)'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다 88년에 민정당 낙선운동 일환으로 시작한 민정당사 타격투쟁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연행돼 6개월 정도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전국의 민정당사 200여 곳에 대한 타격투쟁이 있었다. 감옥에서 나와 연대 총학생회 홍보부장, 서총련 선전국장 등을 거치면서 계속 선전 일을 고민하다 89년에 당시 전대협 선전국장이었던 박혁묵님(현 변호사)의 후임으로 전대협 선전국장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 훨씬 더 깨어 있고 적극적"

- <말>지 기자로도 활동했다던데.
"92년 <말>지에 공채로 입사해서 한 5년 일했다. 당시 영화에 문외한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문화 담당 기자가 됐고, 문화 담당 기자로서 역할을 찾다 보니 검열제에 대해서 취재도 하고, 또 맞서게 됐다. 당시 가수 정태춘씨가 사전검열을 거부한 음반을 내는 등 열심히 투쟁했는데, 같이 하게 됐고 결국 영화나 음반 검열제도에 대한 위헌결정을 받아냈다. 그것이 문화나 영화 쪽 분들과 인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게 지금 영화사 대표까지 맡게 된 배경이 된 것.

영화사 대표로서 한 마디 더 하자면, 스크린쿼터는 지켜져야 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자국 영화를 만드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세계 영화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게 우리의 정신과 문화까지 전부 뺏겨서는 안 된다."

-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5·18세대나 후배 세대들에 한 마디 한다면.
"5·18세대는 정말로 열심히 싸워왔지만, 지금도 그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그 못다 이룬 꿈들을 위해서 5·18세대들이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모범적으로 성실하게 살면서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분야에서 개선도 시키고 비전도 만들어낼 수가 있으니까.

요즘 젊은 벗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깨어있고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5.18세대들이 못다 이룬 꿈, 분단 조국의 통일, 민주주의의 심화, 민중의 삶의 질 개선 등등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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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시민입니다. 현재 참여연대(www.peoplepower21.org) 실무자로 '민생희망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과 다양한 강좌 프로그램도 종종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희망의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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