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79회

범 우주 동맹

등록 2006.09.22 16:39수정 2006.09.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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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이 약간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을 때는 짙은 안개가 사방을 덮고 있었다. 솟의 눈앞에는 춤을 추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죽은 듯이 조금의 뒤척임도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솟은 허리를 굽혀 자신의 발밑에 잠들어 있는 사영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사영 역시 분명 숨을 쉬고 있었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솟은 좀 더 힘을 주어 사영을 흔들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솟은 그차와 모로를 깨우려 했지만 그들도 역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솟은 그들이 딱히 해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은 받지 않아 크게 당황해하지는 않았다.


그때 안개 속에서 솟을 향해 무엇인가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솟은 그 사실을 알아 차렸지만 그것이 위협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솟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에 그들을 잡아 죽이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 짐승이었지만 이상한 가죽을 걸치고 털이 나지 않은 이질적인 모습은 솟에게 썩 좋은 기분을 주지는 않았다.

그 짐승은 둘이었는데 솟은 그 중 하나가 자신을 도운 짐승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이 예전에 사로잡았던 짐승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솟은 조심스럽게 몸의 긴장을 유지하며 짐승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그알 그알 그알......

짐승이 무엇이라고 소리를 내더니 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이상한 물건을 꺼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삐 아라라라라 나 소로로라 루루


그 선율은 솟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솟은 그 짐승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짐승들 역시 자신들끼리 ‘그알 그알’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솟이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던 탓이었다.

솟은 그 짐승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것을 눈치 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을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깨어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는 상황이 어쩐지 그 짐승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솟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이 갈라졌다.


첫 번째, 짐승들을 힘으로 제압해 버린다.

솟은 예전에 짐승들을 상대하던 때를 떠올리며 저들이 완력으로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임을 깨닫고 있었다. 돌팔매만으로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고 솟의 가죽옷 속에 숨긴 모난 돌의 무게는 그대로 솟의 온 몸에 전해져 오고 있었다. 당장 이것을 꺼내어 들어 둘 중 조금 더 강해 보이는 이상한 상자를 다루는 짐승을 제압한 후 나머지 약한 녀석을 제압하면 이런 불편한 상황은 비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솟은 이런 방법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자신이 심하게 다쳤을 때 짐승들 중 하나가 도움을 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이상한 짐승은 솟에게 큰 이익 하나를 준 것이었고 솟은 그 이익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계약에 대해서 일방적 파기라는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솟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고 이익을 주고받음으로서 더 큰 대가를 누려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러한 계약을 파기 할 만큼 지금이 위중한 상황도 아니었다.

두 번째, 짐승들의 행동을 지켜본 후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

솟에게 있어서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 역시 문제는 있었다. 짐승들은 감미로운 소리가 나는 상자를 든 채 그저 기약없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솟에게 먼저 접근해 온 것은 짐승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이 솟에게 일러주는 것은 단 하나, 그들 역시 솟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대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위험부담도 없는 행동이었지만 솟은 이 두 번째 항목도 곧 선택의 가짓수에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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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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