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우는 산이 있는 곳, 돈황

실크로드 여행기 9

등록 2006.09.26 16:39수정 2006.09.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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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꽃 곱게 핀 명사산 풍경. 모래와 꽃이 대조되어 풍경은 아름답고 쓸쓸하다.

꽃 곱게 핀 명사산 풍경. 모래와 꽃이 대조되어 풍경은 아름답고 쓸쓸하다. ⓒ 최성수

모든 여행은 해피엔드

저녁을 먹고 트루판 역을 향해 출발한다. 돈황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를 타고 역으로 가는 내내 나는 몇 해 전 트루판 역에서 시내로 오던 길을 생각한다. 어스름한 새벽,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는 마치 우주의 어느 귀퉁이를 유영하는 것 같았다. 조금씩 밝아오는 지평선의 모습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지고 있었다. 역이 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트루판 시내는 해발이 마이너스이니, 차는 조금씩 휘어지며 그런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는 그런 풍경을 감상할 틈이 없다. 아니 그런 풍경을 조금 보기는 보았다. 그러나 마음이 다급해지니, 풍경이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트루판 시내에서 출발한 시간은 역에 도착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역 가까이에 다 와서 일어났다.

역을 한 오 분 남짓 남겨둔 거리에서, 갑자기 도로가 막혔다. 앞에 공사를 하니 돌아가란다. 아니, 길이 막혔으면 들어오는 입구 갈림길에서 안내를 하던지 해야지, 이게 무슨 일이야, 차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두들 어이없어 하는 사이, 위구르인 기사는 얼른 차를 돌린다.

온 길을 한참 되 달리는데, 역으로 가는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사가 길을 알고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차 시간은 이제 이십 분도 채 남지 않았다. 기사도 다급해졌는지, 가이드인 조선족 친구에게 자꾸 표지판을 읽어보라고 손짓이다. 알고 보니 기사는 중국어를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표지판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a 중국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 그는 진심을 다해 승객의 편의를 살펴주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중국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 그는 진심을 다해 승객의 편의를 살펴주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 문정애

마음은 자꾸 다급해진다. 비포장에 길도 없을 것 같은 곳을 버스는 마구 달린다. 이제 십오 분 남았다. 마음속으로 아예 돈황 행을 포기한다. 할 수 없지, 오늘 트루판에서 하루 더 자고, 내일 일찍 가는 방법을 의논해 봐야겠다, 하는 사이 버스가 역 앞에 도착한다. 열차 출발 십 분 전이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 역사 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사람들이 개찰을 거의 다 한 상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상겼다. 기차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야 할 열차 편으로 우루무치에서 여행사 직원이 표를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어디 있는지 만날 수가 없다는 거다. 가이드가 역무원에서 사정을 설명하는데, 마치 싸우는 것 같다. 차는 곧 출발할 것처럼 시동 소리를 높여댄다.


어떻게 사정을 했는지, 개찰 업무를 담당하는 역무원이 가이드의 신분증명서를 빼앗고 우리를 입장시킨다. 뒤쳐진 가이드는 우리에게 “12호차로 가세요.” 하며 소리를 지른다. 전화 통화로 겨우 우리의 호차만 알게 된 모양이다.

앞 뒤 잴 것도 없이 모두들 정신없이 달린다. 평소 걸음이 느리던 진형이 녀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장 앞서 달려가며 연신 뒤돌아 우리가 따라 오나 확인한다. 겨우겨우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서서히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방을 찾지만, 표가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야 할 호실을 알 수가 없다. 모두들 통로에 늘어서 긴장한 표정이다.


급히 가이드를 찾는데, 제일 나중에 탄 일행이 가이드가 기차를 타지 못했다고 말한다. 신분증을 찾아야하는데, 기차는 떠나버려 타지 못했다는 것이다. 표도 없고, 가이드도 없으니 그야말로 난감하다.

기차 복도에서 우왕좌왕하는데, 훤칠하게 생긴 역무원이 다가와 무어라고 묻는다. 알아들을 수 없다. 일행 중 다행히 중국 유학을 한 송희가 나서서 통역을 한다. 우리 사정을 설명하자 그 친구는 당황한 우리를 안심시키고, 표가 없더라도 방은 이미 배정되었으니 걱정 말라며, 우리에게 방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또 가이드에게 전화까지 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나중에는 가이드가 새벽 세 시쯤이면 이 기차로 옮겨 탈 수 있을 거라며, 바로 뒤에 출발하는 기차가 하미 역 근처에서 이 기차를 앞지를 것이라고 설명까지 해 주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 내내 그는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고, 걱정스런 우리 마음을 다독일 줄도 아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여러 차례 중국 여행을 한 중에 만난 가장 친절한 중국인이었다.

일행 모두들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웃음이 터진다. 별 일을 다 겪어본다는 사람에, 이런 재미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은 해피엔드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여행의 맛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리라. 그리고 문제 때문에 또 다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그 새로움이 여행의 다른 맛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니, 모든 여행은 해피 엔드일 수밖에.

마사지 도로를 지나 돈황 시내로

유원 역에서 돈황 시내 가는 길은 여전하다. 몇 해 전 찾아왔을 때의 그 괴롭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포장한 것이 더 문제다. 지반을 제대로 다지지 않고 포장을 했는지, 곳곳의 도로가 굴곡으로 이어져 있다. 운전기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천정에 닿을 듯 솟구쳤다 떨어진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아찔하다. 저러다 운전대라도 놓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a 월아천 옆 새로 만든 호수 앞에 한 중국인이 앉아 상념에 잠겨있다. 그의 생각이 곧 사막의 사상일까?

월아천 옆 새로 만든 호수 앞에 한 중국인이 앉아 상념에 잠겨있다. 그의 생각이 곧 사막의 사상일까? ⓒ 최성수


승객도 마찬가지다. 버스가 굴곡을 넘어설 때마다 몸이 붕 떴다 떨어진다. 제법 쿠션이 있는 버스지만, 엉덩이가 얼얼하다. 몇 해 전의 길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길을 달리다보니, 내가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 길이 두어 시간 이어진다. 몇 차례 공중에 떴다 떨어지던 진형이 녀석이 불쑥 한마디 한다.

“이건 마사지 도로야.”

그 바람에 모두들 크게 웃는다. 아이딩호 가는 길보다 더 심한 굴곡이다. 그래도 길 가로는 아득하게 고비 사막이 이어지고, 낙타풀이 자라고, 모래 먼지가 인다. 전형적인 사막이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달리자, 서서히 물길이 나타나고, 홍류가 자라고, 풀숲이 이어진다. 그 끝에 오아시스의 전형적인 풍경인 이열 종대의 백양나무 가로수길이 나온다. 드디어 돈황이다.

돈황, 모래의 땅인 사주(沙州)라고 불리는 곳. 당나라 때까지도 이곳이 중국의 국경이었다. 이곳에서 관문을 나서면, 작은 오아시스 국가들이 이어지고, 본격적인 실크로드의 아득한 사막 길이 시작된다. 나는 돈황으로 들어서며 문득 선선, 누란, 구자, 고창, 소륵, 미란 그런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그 오아시스의 작은 나라들로 가는 길목이 바로 여기, 돈황이기 때문이다. 그 돈황에 온 것이다.

명사산, 모래가 울어 아름다운 곳

저녁 무렵, 명사산(鳴沙山)을 오른다. 이름 그대로 고운 모래가 큰 산을 이루고 있다. 북적대는 사람들로 산 아래는 도떼기시장 같지만, 산 위는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그 적막감을 느끼기 위해 몰아치는 모래 먼지를 헤치며 산을 오른다. 모래 산으로 오르는 길에 나무 사다리를 놓아두어 그래도 힘이 덜 든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산 아래의 풍경이 그림 같다.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시야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a 나무 너머로 한없이 가는 모래들로 만들어진 명사산. 그 산길을 낙타를 타고 다시 가고싶다.

나무 너머로 한없이 가는 모래들로 만들어진 명사산. 그 산길을 낙타를 타고 다시 가고싶다. ⓒ 최성수


산꼭대기에 오르자 더 큰 모래 산이 이어져 있다. 내려다보니 월아천(月牙泉)이 곱게 모래산 사이에 놓여있다. 그렇다. 월아천은 모래산 사이에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온통 흐릿한 모래의 풍경 사이 그토록 눈부신 샘과 풀과 나무들이 있기에 월아천은 더 돋보인다. 대조의 아름다움이 명사산과 월아천에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계속 이어져 있는 명사산의 더 높은 봉우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늦둥이 진형이가 나를 잡아끈다. 녀석이 가리키는 곳에 샌드 바이크가 보인다. 사람을 태우고 더 높은 명사산 꼭대기까지 안내해 준다는데, 워낙 탈것을 좋아하는 녀석이 그것을 타보고 싶은가보다. 혼자서는 태우기 힘들 것 같다는 핑계로 나도 녀석과 함께 샌드 바이크를 탄다.

넘어질 듯 기우뚱대던 샌드 바이크는 이내 자세를 잡더니, 모래 산을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점점 높은 산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몇 개의 작은 산을 넘은 오토바이는 마침내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그 산꼭대기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세상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부는 바람이 부드러운 모래를 자꾸 날려 모래 물결을 만들어낸다. 마치 바닷가 백사장에 쉬지 않고 밀려오는 물결처럼, 바람은 밀려왔다 밀려가며 모래의 물살을 만들어내고, 모래들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또 다른 자리를 찾아 헤맨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저 모래들이 또 다른 산 하나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a 명사산 상상봉에서 만난 모래물결. 바람에 모래들이 작은 무늬를 끝없이 만들어 놓는다.

명사산 상상봉에서 만난 모래물결. 바람에 모래들이 작은 무늬를 끝없이 만들어 놓는다. ⓒ 최성수


a 명사산에서 내려다본 월아천. 치롄산맥의 물이 아득한 거리를 흘러와 이곳에서 솟아나, 저렇게 예쁜 풍경을 그려낸다.

명사산에서 내려다본 월아천. 치롄산맥의 물이 아득한 거리를 흘러와 이곳에서 솟아나, 저렇게 예쁜 풍경을 그려낸다. ⓒ 최성수

아득히 멀리 오아시스 마을인 돈황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다른 쪽에는 첩첩 모래 산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사방은 저녁 어스름과 함께 모래 먼지가 날려 흐릿하다. 미음이 괜히 쓸쓸해진다. 마치 스러져가는 한 시대를 보는 것 같은 아득함이 밀려온다. 천지 적막 속에 오직 바람 소리와 모래 쓸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명사산.

그 명사산의 느낌은 다시 모래 산을 내려오고, 월아천의 어둠 속에서 행피수(杏皮水:살구 쥬스)를 마시는 동안에도 내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런 느낌은, 월아천의 냇물이 아득한 거리 저쪽의 치롄산(祁連山:칭하이성에서 간쑤성까지 이어진 산맥.)에서 땅 속으로 흘러와 이곳에서 솟구친 것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자연의 조화 때문에 더 든 것인지도 모른다.

막고굴, 세월의 흔적

a 명사산 상상봉 너머 첩첩 이어진 모래 산. 그 막막함이 전해져 온다.

명사산 상상봉 너머 첩첩 이어진 모래 산. 그 막막함이 전해져 온다. ⓒ 최성수

돈황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리는 두 코스가 있다. 하나가 명사산이고 다른 하나가 막고굴이다. 막고굴은 천불동의 하나다. 명사산의 한 자락에 수많은 굴을 파고, 굴 속에 벽화와 불상등을 조성해 놓았다.

막고굴은 동진(東晋) 때인 서기 366년 락준(樂樽)이라는 스님이 조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사산과 삼위산 사이에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빛은 천 개의 불상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스님은 그것이 부처님의 계시라고 생각하여 굴을 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뒤 원나라 때까지 약 천 년에 걸쳐 숱한 사람들이 굴을 파고, 벽화를 그리고, 불상을 조성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막고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a 막고굴 입구. 돈황학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을만큼 막고굴은 문화의 보고다.

막고굴 입구. 돈황학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을만큼 막고굴은 문화의 보고다. ⓒ 최성수

첫 번째 방문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막고굴은 신비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특히 이번에 우리에게 설명을 해 준 한족인 막고굴 연구원은 우리말을 분명하게 구사하며, 역사적 지식도 해박해 막고굴과 우리 역사, 문화를 연결 지어 이야기해 주는 덕에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a 바스러지는 벽에 굴을 파고 만든 막고굴. 어쩌면 저 굴도 사막의 모래 한 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바스러지는 벽에 굴을 파고 만든 막고굴. 어쩌면 저 굴도 사막의 모래 한 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최성수

두어 개의 굴을 보고 났는데,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더위를 먹었는지 더는 못 가겠다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속이 좋지 않은지 아침도 걸렀는데,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어린 아이가 지칠 만도 하다.

그냥 밖으로 나가 나무 그늘 밑에서 기다리자고 하니, 녀석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17번 굴은 꼭 봐야겠다는 것이다. 여행 떠나기 전 읽은 책에 막고굴에 가면 혜초 스님의 유물이 나온 17번 굴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는 거다.

지친 녀석을 끌고 제일 끝에 17번 굴을 본다. 녀석은 그제야 기운을 좀 차렸는지, 종알종알 장경동이 어떻고, 왕오천축국전이 어떻고 하며 떠든다. 녀석은 아마도 평생 17번 막고굴과 혜초 스님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 한가지만으로도 늦둥이를 데리고 한 이번 여행의 이미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 나오는 막고굴은 천년 풍파를 고스란히 견뎌낸 사막의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건너기 위해 이 돈황에 왔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 막고굴에 들러 실크로드의 역사와 삶을 생각했을까? 그 오래 전, 변변한 교통 수단도 없이 이곳까지 목숨을 걸고 찾아왔을 막고굴 벽화 속의 주인공인 신라 왕자를 떠올리며, 나는 새삼 사막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어쩌면 막고굴의 저 소중한 유물도 오랜 세월 뒤에는 명사산의 고운 모래처럼 한 알의 점으로 남지 않을까? 사막에서는 영원한 것이 없으며, 사막에서의 삶 또한 그런 것이리라. 모래 위에 새겨진 화려한 미술품을 보는 것 같은 허전함이 막고굴을 나오며 든 것은, 사막에서 보낸 나의 밤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a 막고굴은 락준이 처음 팠다고 한다. 천 여 년을 만든 그 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막고굴은 락준이 처음 팠다고 한다. 천 여 년을 만든 그 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김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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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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