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차 운전원'을 단체장으로부터 해방시키자?"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간다⑪] 현장 공무원의 '생생한' 전용차 이야기

등록 2006.09.27 09:18수정 2006.10.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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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시대, 서민들은 갈수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세금으로 굴러가는 고위 공직자들의 전용차는 갈수록 최고급차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희망제작소(www.makehope.org) 사회창안팀에 제안된 '관용차를 경차로'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녹색교통운동,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동 기획해 특집기사를 내보냅니다.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는 제목의 이번 기획을 통해 관용차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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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무실 폐쇄에 항의하는 공무원노조 시위대 앞을 지나가는 '위풍당당' 관용차. 관용차는 잘못된 공무원 사회가 낳은 낡은 유물이다. ⓒ 전국공무원노조

1호차.

이른바, 단체장들이 타는 관용차(전용 승용차)를 흔히 그렇게 부른다. 1호차는 대개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색의 3000cc 이상의 대형차로 항상 윤이 번들번들 먼지 하나 없는 (최)고급 자동차다. 이 1호차에는 또 다른 1호가 포함되어 있다. 공직사회에서 남보다 먼저 출근하고 남보다 늦게 퇴는 하는, 바로 단체장 전용 승용차를 운전하는 '1호차 운전원'이다.

과거 관선 시절에는 1호차 운전원이 청사 내 전체 운전원 모임의 회장을 맡는 게 관행이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부 자체단체에는 이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을 가까이 모시고 다니니 알아서 대접(?)한 것이거나, 아니면 뭔가를 바라고 권력과 가까운 1호차 운전원에게 회장 자리를 맡긴 것이리라.

1호차 운전원은 파워도 단체장급?

관선에서 민선으로 넘어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관용차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 첫 번째가 대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이 법규에 규정된 전용차의 최소 사용 기간(5년)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의 섣부른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 전용차를 5년 이상 사용하는 자치단체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항상 새까만 대형차에 '비까번쩍한' 새 차, 이것이 자치단체장들이 사용하는 전용차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지난 5.31 선거로 새롭게 선출된 단체장들 중에 전직 단체장이 타던 차를 그대로 이용하고 5년 후에 바꾸겠다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있었는가?

또 관용차인 전용차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단체장의 공무수행에만 사용해야 하고 퇴근 후나 사적인 용무 시에는 사용할 수 없다. 운전원 역시 공무수행을 위해 존재한다. 단체장이 근무 시간 외에 사적으로 운전원에게 관용차 운전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국 자치단체장 중 이 같은 관용차 사용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단체장의 막강한 권력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전용차를 왜, 사적으로 쓰느냐"고 말할 용기 있는 공무원은 없다.

당연히 운전원들도 근무 시간이 아닌 한밤중에 불러도 "예!"하고 차를 몰고 관사로 가야 한다. 근무 시간에 단체장 부인이 사적 용도로 사용할 때에도 운전원은 군말 없이 단체장 사모님 운전기사가 되어야 했던 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운전원들이 관용차 운전원 즉, 공무원이 아닌 '자가용 운전기사'가 되어 버린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초과잉 노동과 초고속 승진, 부끄러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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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차라고 하면 '당연히' 검은색의 3000cc 이상의 대형차를 떠올리게 된다. 관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원은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이지 않은 일을 하게 될 때도 있다. ⓒ 현대자동차

부끄럽게도 여기에 일부 운전원들의 잘못된 협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체장 전용차량을 운전하는 공무원들이 사적으로 관용차를 사용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키는 대로 문제의식 없이 따르는 일부 운전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운전원들은 공무원이면서도 단체장의 사적 부름을 충실히 따르면 나름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000도 00군 1호차 운전원이 있었다. 운전원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1호차 운전원을 나이 45세에 하게 된 그. 그 사람도 처음에는 아무 때나 부르는 관사의 호출에 짜증도 내고 그 위법성이나 부당함을 술자리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공무원 특성상 휴일에 잡혔던 친목모임에 항상 빠져야 했고 거의 24시간 '항시 대기' 상태로 근무했다.

그러던 그가 1호차 운전원으로 일한 지 1년 정도 되자 군청 내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려운 민원이라도 그를 통하면 다 해결할 수 있고 심지어는 승진, 청탁까지 그에게 부탁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언젠가는 내게 와서 군수의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노조는 문제가 있다며 손 봐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1호차 운전 1년 만에 '운전원'에서 '단체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이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모 지방자치단체의 운전원 회장이 됐다. 결국 그는 운전원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기능 6등급으로,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배들을 제치고 먼저 승진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단체장의 개인 몸종(?)이 되어 봉사한 대가였던 셈이다.

당연히 그의 승진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운전원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같은 직무라는 이유로 잘 단결하던 운전원들의 보이지 않는 위화감과 갈등이 표면화됐다. 당시 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는 그에 대한 비판글이 꽤 올라왔건만 바뀐 건 없었다.

관용차 운전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는 법. 자치단체장이 바뀌자 잘못된 운전원 기능직 승진 인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결국 그는 운전원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는 현 전용차 운전원 근무제도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술자리 술안주로 삼고 있다.

물론 그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막강한 단체장 권한에 짓눌려, 또 자신의 이익과 남보다 빠른 출세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개인만의 잘못으로 혹은 단체장의 잘못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

단체장의 사적 목적의 운전 지시가 위법이긴 하지만 일개 공무원이 단체장의 지시를 거역하는 것은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현재 공무원 제도와 관행 하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전용차의 불법적인 사적 이용' '공무원인 운전원의 자가용 운전기사화 및 초과잉 노동시간'이라는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꼭 전용차량 문제뿐만 아니라 단체장의 지시라고 해도 그것이 부당하다면 거부할 수 있는 공무원 사회의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위직 공무원일지라도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위 공직자들이 법규에 맞게 전용차량의 사적 사용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최소 사용 연한인 5년을 준수하고 공무원인 운전원을 '몸종'처럼 부리는 것을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관용차 운전원은 '공무원'이지 '자가용 운전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오영택 기자는 30년 가까이 일선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영택 기자는 30년 가까이 일선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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