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42회

등록 2006.09.27 08:15수정 2006.09.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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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올 때 그 방 창문이 열려 있었더냐?”

그녀는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인 채 감히 경후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말을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했긴 했지만 처녀의 몸으로 차마 입에 담을 말들은 아니었다.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봉변을 당한 후에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


“나올 때는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들어갈 때는 닫혀 있었다고 기억되옵니다.”

은밀한 수작을 하는 놈이 창문을 열어 두었을 리는 없는 일. 그렇다면 이 아이를 희롱한 후에 열었거나 아니면 흉수가 열고 들어 온 것이다. 서교민은 매우 뛰어난 수하였다. 맡은 일에 철저했고, 그로 인해 비영조와 같은 비밀조직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의 변태적인 성적 취향이었다. 그는 기루에 가서 기녀를 안기보다는 벗겨놓고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계집들의 고의 같은 것을 은밀히 수집하는 취미도 있었다. 그런 자들이 꽤 있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자신이 믿는 수하가 그런 놈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벌써 육년 전이었다.

하지만 서교민은 다행히 계집에 빠지는 자는 아니었다. 그저 그런 행위를 즐기는 것뿐이었다. 계집 때문에 동창의 비밀이 빠져 나갈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저 모른 체 했었다.

헌데 이곳에 들어 온 첫날 기녀도 아닌 시비에게 몹쓸 짓을 시켰다니 마음이 찜찜해 왔다. 이런 사실이라도 알려지는 날에는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후는 얼굴을 싸늘하게 굳혔다.


“고개를 들어 본관을 보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하는 냉랭한 목소리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도 날카롭고 냉랭하게 변하여 마주 보기에 겁이 날 정도였다. 이 시비를 죽이는 것이 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이미 조사를 시작한 터라 죽일 명분도 없었고, 죽이면 오히려 엉뚱한 의심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


“누구든 너를 다시 신문할 일이 없을 것이야. 혹시 있더라도 너는 이 일을 발설하면 안 될 것이다. 너는 죽은 서당두가 속이 불편해 저녁을 들지 않겠다고 하여 차를 올린 것뿐이다. 먼 길을 와서인지 피곤하신지 침상에 누워계신 것을 보고 그 방을 나선 것이다. 알겠느냐?”

그 말에 홍교는 오히려 다행인 듯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그녀 역시 그런 봉변을 당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찌 고개를 들고 나다닐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짓궂은 동료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할 터였다.

“알겠사옵니다.”

경후는 홍교가 더 이상 이 일을 떠벌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입장도 있고 하니 누가 그녀를 위협하거나 강요하여 조사하지 않는 한 스스로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었다.

“너는 얼른 눈물자국을 지우고 옆방의... 아니다. 나가 보거라.”

그는 함곡과 풍철한을 옆방으로 오라고 시키려다가 다른 생각이 들어 말을 바꾸었다. 다음으로 신문하여야 할 자는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자였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이 어느 정도 신문을 하고 나서 부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문득 자신의 말에 살았다는 듯 일어서는 그녀의 하얀 종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여자를 기이하게 밝히는 서교민이 군침을 삼킬만한 아이였다.

그 역시 하종오와 능효봉이란 자가 있는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26

그녀는 사내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여자였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막연하게 조그만 가슴 속에서 사랑을 꿈꾸고 있을 그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초경(初經)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나이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파고 든 손은 자신이 꿈꾸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 거친 손을 거부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두려웠다. 너무 두려워 자신의 비명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스스로의 손으로 입을 막고 있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몸을 더듬는 그 분을 이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겁탈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열세 살 소녀의 사고(思考)는 단편적이었고, 단순했다. 감히 마주 보기도 어려운 어른이 자신의 몸을 만지고 핥는 것은 소름이 돋을 일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거부하는 것은 오직 경직된 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니 그녀가 열네 살이 되던 날 그 어른의 흉측한 것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파고들었고 그녀는 파과(破瓜)의 아픔에 혼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너는 석녀(石女)로구나.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아질게다.”

그 어른은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자신의 몸을 파고 든 후 그렇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고통이었다. 고통 외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어른의 말대로 자신이 석녀라서 그런지 몰랐다. 그러자 그 어른은 자신에게 다른 것을 시키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으로, 온 몸으로 봉사하도록 시켰다.

여린 가슴이 나삼을 찢어낼 정도로 솟아오르고, 티 없이 매끄러운 살결과 한줌도 되지 못할 세류요(細柳腰), 탄력 있는 엉덩이의 완벽한 몸매로 성장했을 때에도 교접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남들이 운중보, 아니 중원 제일의 미녀라고 추켜세울 때에도 그녀는 마음속으로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 만의 은밀한 비밀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어른의 손길은 여전히 소름을 돋게 하였지만 자신의 손은 자신의 몸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석녀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맹렬하게 쾌락을 열망하는 뜨거운 여자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로서의 삶을 버렸다. 대신 그녀는 사내와 같은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로서의 꿈을 앗아가 버린 그 자의 도움으로 운중보를 손아귀에 쥘 생각을 했다. 짐승 같은 그 자에 대한 복수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그 짐승 같은 어른에 대해, 모든 사내에 대해 그 어른에게 당한 짓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마침 그 대상은 있었고,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적은 그 아이를 자신의 의도대로 그녀는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이제 겨우 거웃이 나기 시작한 그 아이는 여자란 새로운 세계에 빠져 그녀가 원하는 데로 움직여 주었다.

그 아이의 손길에 그녀의 몸은 소름 대신 잔 경련을 일으켰고, 그 아이의 숨결에 그녀의 숨결조차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내아이에게 잔인했다. 그녀는 자신의 쾌락만을 얻었고, 절대 교접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사내아이를 언제나 온 몸이 붉게 달아 오른 채로 돌아가게 했고, 아주 가끔 그녀는 자비를 베풀 듯 바위나 풀 위에 사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녀의 마음이 그 사내아이에게 기울게 됨을 느꼈을 때 그 아이는 운중보를 쫓겨나야 했다. 이유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 아이가 쫓겨난 후에 자신을 노리개로 삼고 있는 짐승 같은 그 어른이 꾸며낸 짓임을 알았다. 그 사내아이는 결국 자신 때문에 꿈을 접고 운중보를 쫓겨난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과 같이 보주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고 운중보의 후계를 이으려 노력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녀는 그 짐승 같은 작자에게 반항하듯 그 사내아이가 운중보를 쫓겨난 후에 남들이 인정하는 두 사내를 유혹하여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두 사내 역시 그녀에게는 고통만 안겨줄 뿐이었다.

쾌락을 원하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사내가 아닌 자신과 같은 여자를 찾는 것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그런 취향의 여자를 알게 되었고, 그 짐승 같은 작자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날은 어김없이 그녀의 방을 찾아가거나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끌어 들였다.

그 짐승 같은 작자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를 상대하는 여인까지도 그 작자의 의도에 따라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 때문에 운중보를 쫓겨난 그 사내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보주의 회갑연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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