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세대 정치'와 어떻게 사귈 것인가

[이병선 재팬 워치] 아베 내각 발족과 한국 외교의 과제

등록 2006.09.27 11:03수정 2006.09.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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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베 신조 총리(앞줄 왼쪽에서 네번째)를 비롯한 일본의 신임 각료들이 26일 왕궁에서 선서식에 참석한 후 포토 세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앞줄 왼쪽에서 네번째)를 비롯한 일본의 신임 각료들이 26일 왕궁에서 선서식에 참석한 후 포토 세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역대 최연소이며 첫 전후 세대 총리가 이끌 '아베 신조 내각'이 26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전후세대 정치'에 본격 시동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와 같은 세대로, 정치적 이념을 공유해온 측근 그룹이 요소요소에 포진, 실질적인 정권 운영의 향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특히 총리관저와 자민당 수뇌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관저와 당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시오자키 야스히사(55) 관방장관, 시모무라 하쿠분(52) 관방 부장관, 세코 히로시게(43) 총리 보좌관과 자민당의 나카가와 쇼이치(53) 정조회장, 이시하라 노부테루(49) 간사장대리가 바로 그들이다. 아베 '총리 만들기'의 1등 공신이고, 그가 최근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말한 '싸우는 정치인'에 해당하는 인사들이다.

'싸우는 정치인' 전면에 포진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 있는 전전 세대 일본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가치관과 발상을 지니고 있다. 우선 선배 세대가 가졌던 아시아와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전혀 없다. 일본은 전후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했다고 생각하며, 한국과 중국 등이 바른 역사인식과 그에 따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본다. 따라서 과거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혔던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오직 국제법과 실리만을 따질 뿐이다.

정권의 제2인자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에 발탁된 시오자키 의원은 본래는 일본은행 출신의 금융통이지만, 입각 직전까지 외무 부대신으로서 아베의 대북 강경책을 외무성에 관철시키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번에 신설된 납치문제 담당상을 겸직하게 된 것도 이런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당초 관방장관에는 최연소 총리의 약점을 보완할 중진의원 기용설이 유력했었으나, 아베 총리는 같은 세대의 최측근을 앉히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는 어쩌면 이번 조각을 상징하는 인사일지도 모른다..


그 밑에서 관료 출신 2명과 함께 아베 총리와 시오자키 장관을 보좌할 시모무라 관방 부장관 역시 아베 총리와 '코드'가 맞는 보수 강경파다. '전범은 없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펴는가 하면, 여성 천황을 인정하는 '황실전범' 개정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확실한 보수우익의 목소리를 내왔다.

세코 총리보좌관은 일본전신전화(NTT) 출신의 미디어 전략가로 아베 총리의 국민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관저에 들어가서도 미디어를 통한 홍보 전략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비대해진 총리관저 기능

a 일본의 제90대 신임총리에 선출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26일 저녁 아키히토 국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제90대 신임총리에 선출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26일 저녁 아키히토 국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이들 측근들을 중심으로 총리관저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총리보좌관을 5명으로 늘려 세코 보좌관 이외에도 국가안전보장 담당에 고이케 유리코 전 환경상, 납치문제 담당에 나카야마 교코 전 내각관방참여, 교육개혁 담당에 야마타니 에리코 의원, 경제재정 담당에 네모토 다쿠미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고이즈미 총리 시대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일본 총리관저는 현재 총 인원이 7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한국의 청와대 보다 많은 인원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 관저는 본래 총리를 개인적으로 보좌하는 기관이었으나 점차 국정을 총괄하는 기능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아베 시대에 이런 경향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 쪽에 기용된 나카가와 정조회장과 이시하라 간사장대리도 줄곧 아베 총리와 정책과 이념을 공유해온 측근들이다. 나카가와는 1997년 교과서에서 강제연행과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것을 목표로 의원연맹이 발족했을 때 아베 총리와 함께 이를 주도했으며, 납치문제 대처, 개헌 추진 등에서도 콤비를 이뤄왔다. 역사문제와 관련한 '망언'들을 연이어 쏟아내기도 했다.

유명한 우익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아들인 이시하라 간사장대리는 아버지처럼 이념적으로 편향되지는 않았지만, 개헌과 교육기본법 개정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아베 총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보수강경 성향이다.

이렇게 정서적, 이념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그룹으로서의 '전후 세대'가 일본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우리가 우려하는 개헌과 군사력 강화 등 일본의 우경화를 추동해왔으며, 대북정책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인사들이다. 일본 사회와 정치는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이다.

일관된 원칙과 접근법 필요

한·일관계도 자연 긴장이 감돌 수밖에 없다. 총리 한 사람의 야스쿠니 참배로 관계가 삐걱거렸던 고이즈미 총리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전전 세대에 대한 '비판자' 입장에서 주위를 꺼릴 것 없이 발언하던 상황과, 정권을 직접 책임지게 된 현재의 입장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당장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판가름 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권 초기 모든 정책과 전략은 참의원 선거 승리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의 생리다.

한국, 중국과 정상회담이 중단된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내년 선거에서 야당의 집중공격 대상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베 총리가 평소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보다 더 강한 신념을 밝혀왔으면서도, 막상 총리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국 외교는 일본 '전후 세대' 정치와 어떻게 사귈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원칙과 방향을 세워야 한다. 안이하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서로가 피곤한 소모전만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원칙과 일관성이다.

보수·강경 이미지라고 해서 우선 거부감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 어쨌든 그들은 일본 '전후 세대'의 정서와 생각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지지로 정권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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