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2차 남북정상회담 '핫라인' 맡나

[정치 톺아보기 143] 무죄 확정된 박지원의 향후 '행보'

등록 2006.09.29 08:39수정 2006.09.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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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로로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등 유관 인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로로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등 유관 인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대법원이 28일 '박지원 사건'에 대한 검찰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은 자신을 짓눌렀던 뇌물죄에 대한 '누명'을 벗고 사실상 정치적으로도 '복권'되었다.

가석방 및 사면복권 조처 등이 아직 남아있지만, 시간이 문제일 뿐 박 전 장관의 사면복권은 기정사실로 간주된다.

법무부는 이미 지난 8·15 특별사면 때도 권노갑씨와 박지원 전 장관을 특사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열린우리당의 요청을 받고 이를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권씨에 대해서만 감형 조처하고 박씨는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법무부는 8·15 특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여택수씨 등을 사면복권 조처하면서 "두 사람은 (정대철·서정우씨 등이 포함된) 지난 대선자금 사면 당시 형이 확정되지 않아 제외된 자로서 형평성 차원에서 (이번 사면에) 포함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로 박씨에 대한 가석방 및 사면복권 문제도 자연스레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송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불구속 재판을 받은 뒤에 2004년 석탄일 특사 때 사면복권된 이기호 전 경제수석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과의 '형평성 차원'이다.

이르면 오는 개천절에라도 가석방 조처가 단행되면, 늦어도 성탄절 특사 때는 사면복권이 이뤄질 수 있다.

민주·열린우리당 관계자, 박지원씨에게 출마 권유도


그 전에도 박 전 장관에게 사면복권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확정될 경우 박씨에게는 8·15 특사 때 사면복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대법원의 기각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상고를 하는 바람에 형이 확정되지 않았고, 법무부는 8·15 특사 당시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씨를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검찰의 재상고가 없었다면 박씨는 정치인으로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있었으나, 무리한 표적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검찰이 그것도 모자라 '보복성 상고'로 사면복권 및 명예회복의 기회마저 잃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관계자들은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박씨를 찾아가 고향(진도)에서의 출마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정일 전 민주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오는 10월 25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전남 해남·진도를 가리킨다.

또 지난 5월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법정 구속되기 전에는 5·31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이나 전남지사로 출마해 명예를 회복하라는 권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이들에게 "사면복권이 되더라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모시고 남북관계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에는 아직 뜻이 없다는 얘기다.

또 남북관계 진전 및 민족화해를 위해 자신의 할 일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하는 DJ가 박씨를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박씨는 정치권과 거리를 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박씨 또한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창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를 잘 아는 주변 인사들은 박씨가 석방되면 우선 'DJ의 제2차 방북'을 추진하고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2차 남북정상회담'의 가교를 잇는 핫라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제2의 4·8 합의'를 기대하는 셈이다. 따라서 박씨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양김'의 신임... 북측도 '김정일 핫라인' 복원 원해

a 지난 2000년 4월 8일 베이징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4·8 합의서에 서명한 남측 박지원 특사와 북측 송호경 특사(왼쪽)

지난 2000년 4월 8일 베이징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4·8 합의서에 서명한 남측 박지원 특사와 북측 송호경 특사(왼쪽) ⓒ 자료사진

박씨는 현재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함께 '양김'(김대중-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유일한 남측 인사이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하는 '전략가'라면, 박지원 전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을 사로잡는 '친화력'이 장점이다.

게다가 박 전 장관은 지난 5월 보석이 취소되어 법정구속되기 전까지는 이종석 통일부장관과 호흡을 맞추어 DJ의 2차 방북을 준비해왔다. 북한 측 사정으로 방북이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신임하는 몇 안 되는 남한 인사 중의 한 사람인 박씨는 당시에도 '실효성 있는 대북 창구역'으로 주목을 끌었다.

북한 측도 은근히 김정일-박지원 라인의 복원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여서, 박씨는 핵문제로 교착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 역할을 맡을 적임자로 기대된다. 북한은 김용순·송호경·임동옥 등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들이 모두 사망해 사실상 대남 '핫라인'이 붕괴되어 김정일 위원장만 남은 상태다.

대북송금 특검 당시에는 물론 지난 5월 25일 법정구속될 때에도 북한 당국이 특별담화와 논평을 내 박씨의 석방을 촉구할 만큼, 김정일 위원장은 박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지난 6월 2일 북한의 '아태평화위'는 특별담화를 내 "(박씨에 대한 법정구속은) 화해와 단합, 통일에로 나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로 낙인하면서 이를 단호히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6월 17일 논평에서 "평양상봉의 민족사적 의의를 훼손하고 6·15 지지세력에게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면서 "민족 화해와 협력, 통일에 이바지한 사람들은 통일 운동사의 페이지에 남아 빛나게 될 것이지만 그에 해를 주는 자들은 두고두고 규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박지원씨 건강 및 재판에 관심 표명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해 6월 김용순 전 당중앙위 대남 담당 비서와 송호경 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 수행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 일꾼들에게 6·15 북남 공동선언발표 5돌에 즈음하여 조국통일상을 수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 또한 방북 인사를 접견할 때마다 직접 박 전 장관의 건강과 재판에 관심을 표명해왔다.

특히 지난해 6월 정동영 통일부장관 접견시에는 박 전 장관의 근황을 물으면서 "박 장관이 송호경 대표와 폭탄주 담판을 벌여서 남북 정상회담의 기초가 된 역사적 4·8 합의를 이뤄냈다"고 말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아래 상자기자 참조).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아끼지 않는다. 제2차 방북을 추진하던 DJ는 지난 5월 박 전 장관이 법정 구속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변호인인 소동기 변호사(법무법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 사람(박지원)이 없으니 불편해서 안되겠다"며 "언제 나오게 될 것 같냐"고 말할 만큼 석방을 고대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2004년 11월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을 계기로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 DJ의 지시로 2차 방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 5월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뇌물죄(현대비자금 150억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대북송금 관련 부분 등에 대해서는 유죄(징역 3년)를 선고해 법정구속하는 바람에 재수감되었다.

김정일 "박지원이 북조선에 폭탄주 전파해"
지난해 6월 정동영 통일장관 오찬 당시 박지원 재판에 관심 표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6월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의 오찬 도중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에 대한 재판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박 장관이 송호경 대표와 폭탄주 담판을 벌여서 남북 정상회담의 기초가 된 역사적 4·8 합의를 이뤄냈다"고 말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또 노무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정동영 장관에게 "박 장관이 북조선에 폭탄주를 전파한 장본인이다"면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묻고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DJ를 보좌했던 한 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온 정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해 김 위원장의 안부 인사를 전하면서 박 전 장관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안부 인사도 함께 전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소식통이 전한 김정일 위원장의 박 전 장관 관련 발언록은 다음과 같다.

"장관 선생(정동영 통일부장관) 일행이 (평양을 출발하는 시각이) 오후 비행기가 아니면, (오찬하면서 반주로) 폭탄주 한 잔 돌렸으면 좋겠는데…. 오후에 떠난다니 (폭탄주는) 다음에 합시다.

박지원 장관이 북조선에 폭탄주를 전파한 장본인입니다. 박 장관이 송호경 대표(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낸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 2004년 9월 사망함)와 폭탄주 담판을 벌여서 북남최고위급회담(남북정상회담)의 기초가 된 역사적 4·8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박 장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박 장관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주)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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