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노천탕에서 별자리를 본다

일본 가고시마 여행기(2)

등록 2006.09.29 21:04수정 2006.09.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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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촌부 모습의 히가시이치키 역

촌부 모습의 히가시이치키 역 ⓒ 김영명

이튿날 아침 우리 일행은 이부스키 역에서 다시 18개 역을 거쳐 가고시마쥬오역(鹿兒中央驛)에 되돌아왔다. 예정한대로 심수관 도요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역 출구로 나가지 않고 바로 6번 플랫폼에서 이즈미(出水)방면으로 가는 센다이(川內)행 완만열차에 올랐다. 4번째 역인 히가시이치키(東市來)역에 내린다. 역은 있지만 역무원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야 길을 물어도 볼 텐데.


a 심수관 도요지 정문

심수관 도요지 정문 ⓒ 김영명

마침 역 앞에 주차된 소형 트럭 운전수를 만났다. 발차하려는 운전수를 붙들고 심수관 도요지를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여기서 오른쪽으로 약 5분만 걸어가면 된다고 말한다. 가고시마쥬오 역 구내의 휴대품 보관함에 짐을 맡기고 와야 하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 작은 시골 역에 휴대품 보관함이 있을 턱이 없으니, 5분 정도라면 짐을 끌고서라도 가볼만한 거리라고 생각했다.

a 금수목단문화병[12대 심수관 작. 1873년 만국박람회 출품작]

금수목단문화병[12대 심수관 작. 1873년 만국박람회 출품작] ⓒ 김영명

짐을 끌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앞에서 작은 트럭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선다. 아까 길을 물어봤던 그 운전수다. 운전수가 친구에게 뭐라고 얘기한다. 친구가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운전수의 말은 자기가 직접 '심수관 도요지'에 갔다 오는 길이란다. 도보로 5분 걸린다고 한 말이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자기 트럭을 몰고 가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걸어서는 30분도 더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분명히 이 사람은 자기 트럭에 우리 일행(4명)을 실을 수만 있었다면 태워 주었을 게다(트럭은 4명 타기에 너무나 작았고, 사람이 짐칸에 타는 것은 위법이다).

이번 여행 중 길을 묻느라고 많은 일본사람들을 만났지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을 집어내기 힘들다. 바라는 것 이상의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이것이 일본의 매력이고 일본인의 무서운 저력이다. 택시로 5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역사적으로 '사쓰마번'이 지배했던 이곳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강화도 운요호 사건의 주역인 '오쿠보 도시미치' 등 대한(對韓)강경론자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반한국적인 감정이 강한 이곳에서 심수관은 15대째 조선도공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a 완만열차 내부[중앙의 둥근 손잡이가 특이하다]

완만열차 내부[중앙의 둥근 손잡이가 특이하다] ⓒ 김영명

그러나 규슈지방이야말로 일본에서 가장 한국적이 요소가 많은 곳이다. "규수에서 다다미방을 빼고는 모두 한국인 것"이라고 말한 제15대 심수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부터 가야(가락), 백제, 신라인들의 도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이러한 한국적 전통이 심수관 가문이 한국 성을 유지하며 조선도공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지니게 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본다.


혹자는 심수관의 도자기에는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찾기가 어렵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쓰마의 흙과 일본의 불을 이용하여 조선의 도공 솜씨로 빚었기에 그것이 오히려 세계적인 도자기로 탈바꿈한 것이 아닐까.

a 가고시마 시내를 누비는 전차

가고시마 시내를 누비는 전차 ⓒ 김영명

정유재란(1597~1598년) 때 남원에서 끌려와 지금 15대째 도자기를 굽고 있는 가문. 나는 사쓰마 야끼로 유명한 도자기의 우수성보다 400여년이 지나도록 가문의 전통, 즉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지켜온 정신이 더 존경스럽다.

점심으로, 히가시이치키 역 옆에 '면사쓰마' 상호가 붙은 음식점에서 '라멘세트'라는 음식을 주문했다(¥820). 음식량이 예상 외로 많다. 일본 음식은 무엇이든 양이 적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터에 이렇게 푸짐하게 나오는 것은 뜻밖이다. 시골이라서 그런 것인가?

a 기리시마신구 역 건물

기리시마신구 역 건물 ⓒ 김영명

다시 가고시마쥬오 역으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전차를 타고 가고시마시 최대 번화가인 텐몬칸과 기독교 전래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에 사라진 전차를 일본에서 본다는 것이 한편으로 신기한 느낌이다. 일본에서도 대부분 도시에서 전차가 철거되고, 현재 나가사키와 가고시마 등 5곳에서만 전차를 볼 수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귀여운 아가씨가 전차를 운전하면서 손 신호를 하는 모습이 발랄하고 예쁘다(사꾸라지마행 페리호의 운전대를 잡은 이도 20대 아가씨였다). 전차 요금도 후불제여서 내릴 때 차장 옆 요금 통에 돈을 넣으면 된다.

그런데 나는 마침 동전이 없어서 1000엔 지폐를 넣었다. 우리나라처럼 요금을 제하고 거스름돈이 나오는 줄 알고, 나오는 동전을 모두 챙겨서 내렸다. 전차를 내려서 동전을 헤아려보니 1000엔 그대로다. 본의 아니게 전차요금을 '삥땅'한 셈이 됐다. 일금 160엔을.

그래서인지 돌아오는 길에는 행선지가 다른 전차를 타는 실수로 엉뚱한 곳에 내려, 부득불 택시를 타고 가고시마쥬오 역에 올 수 밖에 없었다. 벌을 받은 꼴이 되었다.

a 기리시마신구 온천지의 발(족)탕

기리시마신구 온천지의 발(족)탕 ⓒ 김영명

하야시다(林田)온천을 가기위해 기리시마신구(霧島神宮)역까지 가는 JR특급열차 지정석 표를 받았다. 기리시마온천향(霧島溫泉鄕)에는 7개의 온천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하야시다 온천'이다. 이 온천은 기리시마온천향 중 가장 오지(奧地)에 자리 잡은 유황천이다. 하야시다 온천을 대표하는 온천업소로 기리시마 이와사키 호텔이 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가서 묵을 호텔이다.

열차로 1시간 정도 긴코만(錦江灣)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려서 도착한 곳이 기리시마신구(霧島神宮)역이다. 이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35분 달려야 하야시다 온천에 도달한다.

하야시다 온천에 가기 전 중간 지점에 기리시마신궁이 있고 그 주변이 '기리시마신궁 온천지'이다. 기리시마신궁 버스정류소에 내려 신궁 관광을 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버스시간에 맞추다보니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니니기노미코토'를 모신 신궁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인근에 있는 노천발탕에 발을 담겨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a 기리시마 온천향(하야시다 온천)의 이와사키 호텔

기리시마 온천향(하야시다 온천)의 이와사키 호텔 ⓒ 김영명

하야시다 온천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올라간다.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에 속하는 기리시마산이 있는 곳이다. 많은 봉우리 가운데 해발 1700m의 간고꾸다께(韓國岳)가 가장 높다. 간고꾸다께에 올라서면 멀리 한국이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간고꾸를 '가라쿠니'라고도 발음하는데 이 말은 가락국의 일본 발음이다.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고사기>에는 일본의 초대왕인 진무(神武)천왕의 증조부인 '니니기노미코토'가 가라쿠니다케에 올라가 북쪽의 한반도를 바라보며 "여기는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한국(가락국)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니니기노미코토'가 한국인(가락국의 왕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료로 자주 언급된다.

기리시마시(霧島市)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韓国とは「韓国の見岳」の略称といわれ,「皇孫がはるかに韓国を望見せられた」という神話説もあります."

a 이와사키 호텔의 숲속의 노천탕

이와사키 호텔의 숲속의 노천탕 ⓒ 김영명

버스 차창 밖 곳곳에서, 유황천에서 뿜어 나오는 흰 연기를 볼 수가 있다. 신구(神宮)온천, 마루오(丸尾)온천, 이오다니(硫黃谷)온천 등을 지나 버스의 종착지에 이와사키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해발 800m의 숲 속이다.

밤 8시부터 10시 30분까지 숲 속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기에 호텔방에서 유까다로 옷을 바꿔 입고 서둘러 나왔다. 봉고형 미니버스를 탄 우리 일행은 산골짜기로 내려갔다.

깊은 산골짜기에 개울물이 흐르고, 그 옆 바위틈에 크고 작은 소(온천탕) 8개가 만들어져 있다. 숲 속 노천탕 속에 몸을 잠그고 음악처럼 들리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감상한다. 세상의 시름을 다 잊은 듯이(여름철에는 낮에도 개방한다고 한다).

이곳 호텔 내 노천탕은 크기로 한 몫을 한다. 길이 약 30m, 너비 약 10m의 욕탕 속에 하얀 유황의 찌꺼기가 깔려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이 온천은 사쓰마의 2대 온천 중 하나로 사쓰마 영주의 전용 온천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신경통, 근육통, 관절통, 오십견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다음 코스는 사쿠라지마 관광이다.

a 이와사키 호텔내 규모가 큰 노천탕

이와사키 호텔내 규모가 큰 노천탕 ⓒ 김영명

덧붙이는 글 | * <하야시다 온천에 관한 자세한 것은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온천’www.spakorea.pe.kr 에서 외국온천을 참고할것>

덧붙이는 글 * <하야시다 온천에 관한 자세한 것은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온천’www.spakorea.pe.kr 에서 외국온천을 참고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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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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