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레바논계 소년이 반전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윤여문
무슬림을 공격하라, 그러면 표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호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인종문제는 십중팔구 정치집단에서 빌미를 제공하고 그 이득을 챙겨간다. 1백만명 안쪽에 불과한 무슬림을 공격하면 절대 다수(약 1600만명)의 기독교인이 내 편이 된다고 계산하는 '단세포 동물'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현상은 여야를 불문한다. 최근에 불거진 호주시민권 획득절차의 개정논의도 백인 주류집단의 표심을 노린 정치인들의 얄팍한 계산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2년 이상 체류한 영주권자는 언제든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미국과 달리 시민권 취득에 소극적인 호주의 사정을 감안하여 영주권자로 남아있는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호주 당국은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해왔다.
그런데 9월 17일 입법예고된 개정안을 보면,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4년 동안 기다려야 하고, 영어시험과 호주에 대한 지식을 묻는 시민권취득 테스트(formal citizenship test)를 거쳐야 한다. 18세 미만과 60세 이상은 제외.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앤드류 롭 이민부 차관은 "시민권 취득 테스트는 주요 다민족국가들인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시민권 취득을 위한 대기기간도 호주가 2년인데 반해 미국과 영국은 5년, 캐나다는 3년"이라고 밝혔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77% 찬성.
보수도 진보도 "호주 가치가 싫으면 무슬림이 떠나라"
최근(9월 9일)에 실시된 퀸즐랜드주 선거에서 노동당이 4연속 집권의 신화를 이룩했다. 현재 호주전역의 6개 주정부와 2개 특별구를 노동당이 100% 장악하고 있다. 다급해진 자유-국민 연립당은 선거철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어온 인종문제를 또 다시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존 하워드 총리가 있고, 그의 후계자인 피터 코스텔로 재무장관이 최근 한술 더 뜨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코스텔로는 "호주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무슬림은 시민권을 박탈해야 마땅하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
존 하워드 총리는 이 말을 확인이나 해주는 듯 "무슬림 그룹이 주류사회의 주변부에 머물기 싫으면 호주의 전통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호주에 오지 마라"는 원론적인 발언을 했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온건한 이민정책을 견지해온 노동당 킴 비즐리 당수마저 "관광객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들에게 호주 입국비자 발급시 호주 가치관을 수용하겠다는 서약을 첨부하게 하자"는 뜻밖의 제안을 발표하여 정치인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다만 녹색당의 봅 브라운 상원의원만 "최근 호주의 분위기가 괴기스러울 정도다, 그동안 성공적인 다문화정책을 뿌리내려온 호주에서 자꾸 민족 간의 분열을 획책하는 정책과 발언이 계속 이어진다면 호주의 국론만 분열될 뿐"이라고 여야 정치리더들을 강력하게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