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녘의 최참판댁

정겨운 우리의 전통 한옥을 찾아서

등록 2006.09.30 11:08수정 2006.09.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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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에서 전남 구례로 가는 국도 19번은 어느 분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벚꽃이 피는 4월 초부터 가을철에 이르기까지 각종 꽃길로 유명하고 청정수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경관도 좋고 한적하여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습니다.

하동에서 구례방향으로 10여km 가면 우측으로 평사 들판이 나타납니다. 지리산이 빚은 가장 큰 들녘이라고들 하지요. 사진은 최참판댁 초입에 세워진 길가 원두막에서 찍은 것인데 가운데 두 그루의 소나무가 요즘 들어 최참판댁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본 사랑채 전경입니다. 이 집에서 가장 잘 지어진 곳인데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랍니다. 누마루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평사들녘(무딤이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합니다. 이 곳 주민들은 '무딤이들'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지금은 치수관리가 잘 되어 좀처럼 이 들판이 범람하는 일이 없지만, 20~30년 전에만 해도 한 해 걸러 한 번씩은 들판이 온통 물바다가 될 정도로 자주 범람했답니다. 그래서 '물에 잘 담긴다'고 해서 '무딤이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이 고장의 전설에 따르면, 이 들판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호수가 세 개 있는데(1980년 수해까지 실제로 호수가 있었고 그 중 제일 큰 호수가 지금도 남아있는 동정호입니다) 그 중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장마철이면 악양천 쪽 제방을 꼬리로 쳐 본류인 섬진강이 넘치도록 한다고 합니다.



사랑채 마당가에서 내려다 본 평사들녘입니다. 이무기가 살던 곳은 소나무의 좌측 끝부분인데 1980년 하동수해 이후 군부정권이 중장비를 동원해 두 호수를 메웠습니다. 전북 진안에서 시작한 물길이 굽이돌아 지리산 노고단, 피아골, 벽소령 등에서 흘러내린 물을 안고 흐르는 맑은 물, 섬진강이 멀리 보입니다.


사랑채 전경입니다. 이 집에서 가장 세련되게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5량 구조의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위에 여덟 '八'자 모양을 한 판재가 보이는데(합각부) 팔작지붕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마당가 화단에 심은 꽃무릇입니다. 상사화(相思花)라고도 하며 꽃이 먼저 피고 그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돋아 평생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고 헤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최참판댁 위에 있는 한산사 입구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지천으로 피었는데, 지금은 도로 확장공사를 한 터라 많이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계자각이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서있습니다. 계자각 위에 가로댄 부재를 돌란대, 계자각 밑에 보이는 기둥을 누하주, 그 위의 기둥을 누상주라고 합니다. 누상주와 누하주의 연결법은 다층식 한옥의 근간을 이루는 공법으로 '황룡사9층목탑'을 탄생시킨 우리 선조님들의 과학적 기술이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공으로 깎은 주춧돌이 맨 아래로 보이는데 주변의 자연석으로 했으면 한층 더 운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안채의 곳간입니다. 구조는 3량 맞배지붕을 하고 있군요. 양쪽 기둥 위쪽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처마도리요, 양 도리에 연결된 부재가 보, 그의 중간에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것이 대공(판재로 되어있으니 이를 판대공), 그 위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마룻도리, 이렇게 해서 도리가 양 옆에 두 개, 맨 위에 한 개가 되어 도합 세 개가 되니까 이를 3량집이라고 한답니다.

또한 지붕의 덮개가 양쪽으로 마주보며 덮여있다고 맞배지붕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기와 밑에 양 쪽으로 경사지게 대어놓은 넓은 판재를 박공이라고 합니다. 이런 맞배집에는 박공이 필수적인 부재로 쓰입니다. 이 맞배지붕 구조가 비교적 나무소요량이 적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어 최근에는 그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안채의 굴뚝입니다. 안방마님이 거처하는 집답게 살림살이가 많이 걸려있습니다. 이렇게 낮은 굴뚝을 설치하는 이유는 이웃에 연기가 새어나가는 걸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아궁이의 땔나무가 순식간에 타지 않고 새벽녘까지 서서히 타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답니다. 말하자면 겸양지덕과 절제하는 마음가짐이 이 굴뚝에서 나타나는 셈입니다. 이렇게 낮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마당에 좍 깔리면 마치 구름을 탄 신선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별채입니다. 소설 <토지>에서 서희가 거처하던 집입니다. 사랑채와 정반대 위치에 대칭적으로 세워진 건물로 축소판인 양 서로 닮은 꼴입니다.


서희네 우물마루입니다. 선자서까래와 함께 한옥의 백미라고 하는 정통 우물마루입니다. 들기름을 자주 발라 마루에서 윤기가 좌르르 흐릅니다. 정면으로 안채가 보이는군요.



후원 너머로 보이는 초가집입니다. 마당에 가득 핀 코스모스와 함께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짚 이엉이 참 정겹습니다.

뒤로 보이는 산이 지리산의 최남단 봉우리인 형제봉입니다(해발 1115m).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쪽에 있는 신선대라는 곳은 봉수대가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현대식 철제 출렁다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뜻있는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올리진 않았습니다만, 마을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공사현장을 보았습니다. TV 방송에서 소설 <토지>가 드라마로 방영된 직후, 탐방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끊겨 많이 한적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가한 마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만, 그 많은 예산하며 공들인 행정력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에 못내 씁쓸했습니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겠지만 청학동을 찾던 탐방객들이 식상해하며 발길을 돌린 것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굴삭기의 소음과 건설장비의 움직임 속에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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