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정통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김종성 기자의 '반일 하면서 친미ㆍ반북 할 수 있나?'를 읽고

등록 2006.10.03 09:01수정 2006.10.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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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기자의 '반일 하면서 친미ㆍ반북 할 수 있나?'(10월 2일)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문득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3.1절과 광복절에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6.25가 되면 김정일 정권을 규탄하며 친미반북을 부르짖는 일부 보수단체들의 모습.

김종성 기자가 지목한 일부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이란 결국 보수진영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 역시 평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당혹감과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은 아마 이 모순적 현상을 논리적으로 얼마든지 해명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반일과 친미반북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일견 아무런 모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 속에서 듣고 보고 느끼는 상황은 좀 다르다. 광복절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반북을 외치는 것을 보면 당혹감과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그중에 일부는 반일과 친미반북을 별개의 사안으로 보고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왜냐면 그들 대부분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보수 언론을 신뢰하는 보수진영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보수진영의 논리 자체에 모순점이 많다는 얘기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태우고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보수진영의 행태는 분명히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무엇이 이상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보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남한의 보수진영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걸까? 나는 그 원인이 '정체성'의 혼란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이 점에 있어선 보수진영이 오랫동안 주도적인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오늘날 남한 사회의 이념적 토대를 살펴보면 민주주의․자본주의․민족주의 등이 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이 민주주의․자본주의․민족주의 등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 옳은 걸까?

일단 자본주의를 살펴보자. 원래 자본주의는 기득권층이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념이다. 누구나 부와 권력을 손에 넣으면 기득권층이 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와 권력이 기득권층에 집중되는 것을 막을 견제 장치가 부족하고 부의 분배가 불합리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어떤 의미에선 보수진영이 자본주의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오직 기득권층만이 자본주의를 논할 자격이 있다는 식의 생각은 금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층 혼자 부를 생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정희의 공(功)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튼 보수진영이 자본주의의 정통성을 내세운다고 해서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경우는 좀 다르다.

혹자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박정희가 악역을 담당한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얘기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름 없는 민초들의 죽음을 뛰어넘은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민중의 피와 눈물이 비옥한 거름이 되어 민주주의를 꽃 피운 것이다.

따라서 보수진영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진보진영은 그와 무관한 듯이 얘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

민족주의와 보수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이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원래 민족주의는 극우주의자들이 단골 메뉴로 사용할 정도로 보수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선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모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수진영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민족주의라고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일본대사관 앞에선 일장기를 태우고 시청 앞에선 친미반북을 부르짖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보수진영이 인공기를 태우는 것은 민족 통합을 가로막는 김정일 때문이고,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미국이 우리 민족의 생존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평소의 생각, 행동, 말을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을 통해 보수진영의 정체성을 유추해 본다면 민족주의와는 확실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보수진영 구성원 개개인만을 놓고 보면 대부분이 뜨거운 민족애를 가슴에 품고 사는 평범한 한국인일 것이다. 하지만 보수진영 전체의 행동 방향은 민족주의와 정반대일 때가 많다. 친일파 청산 문제도 그렇고, 대북정책도 그렇다.

거기엔 반세기 동안 왜곡된 언론 정보와 역사인식, 그리고 친일파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보수진영의 태생적 한계 등이 작용할 것이다.

그로 인해 시청 앞 광장에선 "북한 붕괴, 미국 선제공격"을 주장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해선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정반대 논리를 내세우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 너무나 많다.

북한의 남침에 대해선 극도의 공포심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남북한 군사 전력에 대해선 객관적 평가보다 기존의 과장된 인식을 맹신한다. 북한 인권 문제나 개성공단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햇볕정책을 하건 안 하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건 안 하건 일단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그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빨갱이 운운하면서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보수진영의 행태를 보면 정말 답답하다.

앞으로 보수와 진보가 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만약 남북한 관계에 미국(네오콘)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면 그 부분을 숨기거나 배제한 채 토론을 진행해선 안 될 것이다.

김종성 기자의 지적대로 이젠 남한의 보수진영이 자기모순에 대해 직접 해명했으면 한다. 목적을 달성하면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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