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생동감을 채집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최정화표 미술관람, 오는 15일까지 일민미술관

등록 2006.10.03 10:08수정 2006.10.0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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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과 미술작품을 모아서 연출한 전시회

a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포스터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포스터 ⓒ 일민미술관

2005년 일민미술관 상을 수상한 최정화씨가 연출가의 이름으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전시회를 열고 있다. 배병우, 한젬마씨 외 미술계의 온갖 영역 작가들의 작품에서 채집해 온 미술품과, 홍콩 등지의 공산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전부터 예술의 허식을 뒤집는 유쾌한 키치로 주목을 받아온 최정화씨가 이들을 모았다.


이번 전시에서 최정화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공산품들을 모아 설치하는 역할 뒤로 숨어있다. 이처럼 미술가의 위치를 변형시켰듯이 미술관의 공간성은 변화된다. 그가 연출한 복합적인 공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간 구획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즐겁게 참여하도록 만든다. 관람객들은 작은 놀이동산에 와있는 듯이 보라색 자석을 떼어 원하는 모양으로 주조한다.

박물관에 담긴 현대인의 신앙은

a 최정화 Choi, jeong-hwa  _욕망장성

최정화 Choi, jeong-hwa _욕망장성 ⓒ 일민미술관

전시의 공식 명칭은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ICOM)에서는 “문화적 또는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들을 을 위하여 보관하고 전시하는 상설기관은 모두 박물관으로 간주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네이버 사전 참조) 굳이 박물관의 인문학적 가치를 논하지 않더라도 일반 대중이 '박물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인류학적 가치가 있는 물품들을 모아 역사성을 분석하는 공간이다.

최정화표 박물관은 동시대의 관람객에게는 맥락 없이 뒤죽박죽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현대의 자본과 지적인 권력이 이루는 경계를 허문 채 동시에 한 공간에 담아낸 최정화의 연출은 한편으로 헤게모니가 뒤바뀐 미래의 시선을 예측케 한다. 서민적인 오색바구니와 비닐 배추는 시대의 영웅과 동급이다. 루이비통 포장지 하나를 뒤집어쓴 소파가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 문화적 연구감이다.

'믿음'은 정신적인 가치로 벽화나 제기 등의 물질에 재현되기도 했다. 박물관에서는 종종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라붙는다. “자연현상을 통제하지 못했던 이들은 태양을 숭배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종교의 자유 아래 다원화된 신앙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자본은 종교의 자리를 밀어내고 현대 정신의 중심축 중 하나를 형성한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에 전시되듯이 예수와 석가모니는 샌드백으로 소비된다. 해골에 꽂혀 있는 지폐와 붉은 돼지 저금통이 같은 진열대에 전시된다. 전시관의 마지막 층에는 시골집의 풍경이 인간미의 향수를 일깨우는데, 한편 그 뒤로 “우리는 시와 같은 친구를 원한다”,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등의 비장한 문구가 흘러나오는 지구의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보험광고이다. 위험 통제를 위해 돈을 내어 보험에 드는 현대인의 일면은 후일의 가이드북에 무어라고 설명될까?

모사와 소비의 생동감


a 한석현 Han, seok-hyun  _ MUST BE FRESH!

한석현 Han, seok-hyun _ MUST BE FRESH! ⓒ 일민미술관


모범적인 아름다움의 석고상이나 역사의 위인들 역시 이러한 비틀림을 피해가지 못한다. 예외 없이 붉은 천을 뒤집어쓰고 있다. 백색이 순수와 고결함, 평화를 상징한다면 적색은 이와 거리가 멀다. 시각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정열이 될 수도 있지만 위험이 될 수도 있다. 피를 뒤집어쓴 듯 선명한 붉은 상은, 정적인 반열 위에 올라선 상이 아니다. 오히려 생동하는 대중 가운데 잠시 위압적인 절정으로 기록된 상에 가깝다.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명화 역시 어린아이들이 낙서한 듯한 모사품과 섞여 걸린다. '신선해야 한다'는 배추는 비닐로 만들어져 선명한 녹색을 뽐낸다. 가짜로 채색한 싸구려 공산품이다. 장난감 로봇들은 눈에 전구를 켜고 전선으로 연결되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온갖 로봇 상자들이 함께 팔린다. 이처럼 현대의 생동감은 대중의 모사와 소비문화에 가장 가깝게 담겨있다.

대중의 시선으로 '지켜볼게'

a 구명선 Ku, myung-seon  _지켜볼게

구명선 Ku, myung-seon _지켜볼게 ⓒ 일민미술관

과연 이곳은 새하얗게 잘 닦인 바닥에 반사되는 말끔한 옷차림으로 전문적인 미학적 식견을 가지고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미술관의 공간이 맞는가? 작은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가운데 오색 바구니 앞에 주저앉아 흥정할 슬리퍼 차림의 도떼기시장의 공간인가? 최정화는 이번 전시에서 미술의 경계를 흐리며 미술관의 주체를 소비하고 관람하는 관람객으로 끌어내렸다.

일민미술관이 위치한 광화문은 이순신 동상이 칼자루를 쥐고 서있는 관공서의 밀집지역이다. 이 가운데 전시회의 입구에는 작가가 폐교에서 주워온 페인트와 낙서투성이의 소녀 동상이 놓여 있다. 입구의 현수막은 ‘지켜볼게’라는 제목으로 눈을 빛내는 이름 모를 소녀이다. 돈과 권력이 주조하는 믿음의 체계에서 주역들을 지켜보는 대중의 시선이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지킨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BELIEVE IT OR NOT> 최정화 연출. 일민미술관 1,2,3 전시실 (02-2020-2055) 관람료는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 도심을 오가는 와중 잠깐 들리기에도 부담 없다. 전시기간은 9.1(금)부터 10.15(일)까지이니 추석연휴를 활용해도 좋을 듯.

덧붙이는 글 SBS U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BELIEVE IT OR NOT> 최정화 연출. 일민미술관 1,2,3 전시실 (02-2020-2055) 관람료는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 도심을 오가는 와중 잠깐 들리기에도 부담 없다. 전시기간은 9.1(금)부터 10.15(일)까지이니 추석연휴를 활용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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