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도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

종로구청·세종문화회관 앞 장애인들

등록 2006.10.05 16:48수정 2006.10.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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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보다 긴 올해 추석연휴. 대부분은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연휴가 길어서인지 외국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유난히 많다. 이렇게 긴 추석연휴가 어쩌면 더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들, 또 성람재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두 달이 넘도록 종로구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이다.

그들은 추석연휴에도 쉬지 않고 농성 중이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없어요"

"명절에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없어요. 부모님만 가시고, 전 늘 집에만 있었죠. 그래서 친척분들을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고, 또 친척들 만나는 것도 꺼려져요. 어릴 적 친척분들이 '저런 자식 왜 키우냐, 시설에나 보내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요."

a 종로구청 앞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명동 상임활동가

종로구청 앞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명동 상임활동가 ⓒ 윤보라

두 달이 넘도록 종로구청 앞에서 성람재단 비리, 인권유린 문제에 대해 종로구청의 사태해결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명동 상임활동가(뇌병변장애 1급·남·27)의 말이다.

그는 "저희 부모님 연세가 높으셔서 더는 절 돌봐주시지 못할 경우, 친척들의 말처럼 저 또한 시설이라는 곳에 가야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죠. 그래서 현 사회복지시설들의 문제점을 알리고, 바꾸어보려고 이 성람재단 싸움에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며 농성장에 선 이유를 말했다.


문 상임활동가는 20년이 넘도록 집에서만 생활했다. 물론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01년 종합사회복지관에 다니게 되면서 우연히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 다니면서 고등학교과정까지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다.

그는 집에서만 생활했던 20여 년을 떠올리며 "고민이 있어도 가족들과 대화할 수 없었고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있었다"며 "그때는 내가 장애인이면서도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회활동을 하게 된 후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그는 거의 매일 농성장에서 생활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농성장에서 노숙을 한다. 여름엔 더웠고, 요즘은 밤에 춥지만 그것보다 힘든 일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그는 "성람재단 비리, 인권유린 문제에 대해 서명전을 진행했는데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반응이 별로 없었다. 그런 점이 농성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성람재단 사태를 비롯해 감춰져 있던 시설들의 비리나 인권유린 문제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노력을 기울이고 장애인이 격리되어 수용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결정에 의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명절보다 자신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 해결이 중요"

성람재단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종로구청 앞 농성장 가까운 곳에 또 다른 농성장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0일이 넘도록 실질적인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이다.

a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사무국장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사무국장 ⓒ 윤보라

세종문화회관 앞 농성장에서 만난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사무국장(지체장애 1급·여·41)을 만났다. 양 사무국장은 올해 5월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고 가족들이 교외로 이사하게 되면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 동안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는다. 현재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립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는 "활동보조인 없이는 자립생활을 생각할 수 없다"며 "만약 활동보조인이 없었다면 센터 일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교외로 나가 살아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사무국장은 주로 활동보조인이 가사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그는 "비장애인이 1~2시간에 할 수 있는 가사일을 혼자서는 하루종일 해야만 한다"며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혼자 살 수 없고 가족들에게 의지하거나 시설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 사무국장은 "만약 시설이 존재해야 한다면 소규모의 주거공간으로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더는 시설 내에서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인권유린을 당하는 장애인들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그녀는 "장애인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이라고 해서 가끔 만나는 친척들이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것보다 자신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이번 추석에 농성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성람재단 사태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목표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그들의 목표는 사회로부터 장애인을 격리수용하는 시설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해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지역사회 내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또 시설이 필요하다면 시설 내에서 인권유린,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추석연휴에도 종로구청 앞 농성장과 세종문화회관 앞 농성장의 장애인들은 그동안 사회에서 소외되어왔던 계층이 아닌,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윤보라 기자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www.withnews.com)기자이며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윤보라 기자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www.withnews.com)기자이며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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