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가 재래식 지하벙커 파괴폭탄인 'JDAM'을 투하하고 있다. 미국은 재래식 벙커파괴폭탄의 위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지하핵관통탄(RNEP) 개발에 나섰다FAS
점차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맥락에서 볼 때에도 핵무장은 북한에게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이미 '북한위협론'을 명분으로 군비증강 및 동맹체제 강화에 나서고 있는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는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경우 그 속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MD와 지하요새 파괴용 소형 핵탄두 등 신형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증강과 선제공격을 구체화하는 작전계획 수립 등이 포함될 것이다.
특히 적대 국가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미-일 삼각체제는 북한의 핵무기고(庫)와 지도부를 최우선적인 제거 대상으로 삼을 것이고, 이에 불안을 느낀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 군비증강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핵무기 보유는 핵무장 자체가 갖고 있는 안보 딜레마의 속성과 북한의 경제력 및 기술력, 그리고 한-미-일의 군사력을 종합해볼 때 불가능하다.
북한이 이러한 군비경쟁의 늪에 빠지면 그 결과는 자명해진다. 미국에 의해서든 북한에 의해서든 한반도는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북한은 첨예한 군비경쟁의 여파로 체제 붕괴의 위험성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북한은 또한 '핵 억제력'을 갖게 되면, 재래식 군사력을 줄여 경제회생에 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실제로 북한은 핵 억제력을 갖게 되면 '상용 무력'(재래식 군사력)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거나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볼 때 이 역시 현실화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5대 핵보유국은 핵 강대국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또 다른 핵보유국들 역시 핵무기 보유 이후 재래식 군비 부담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키스탄이 아니라 소련의 몰락에서 교훈 찾아야
일부에서는 북한이 파키스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북한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1998년 핵실험을 강행한 파키스탄은 한 때 미국 주도의 제재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우방국이 되었고 핵보유는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인도를 상대로 한 억제력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핵무기 보유 동기가 대미 억제력 확보인 북한과는 그 상대가 다른 것이다.
또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21세기 전쟁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가운데 하나이다. 부시 행정부가 반미 테러집단을 제거하고 중동을 친미·친이스라엘 질서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수만개의 핵무기를 갖고서도 몰락한 소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소련의 붕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에도 '소련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을 자극해 군비경쟁에 나서게 하는 한편, 경제제재와 봉쇄의 수위를 높여 북한의 내폭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바로 이러한 덫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결국 핵실험은 북한의 '군사적 억제력' 확보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미국 주도의 '비군사적 위협'에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간곡히 호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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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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