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차례상. 이 앞에서 절해본 지도 10년이 넘었다.정연경
올 추석, 매년 차례상 앞에서 절하는 사람은 남자들뿐이었던 우리 집안에 변화가 생겼다. 10년 만에 여자가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한 것이다. 그것도 조부모님의 증손녀인 조카 혼자서 말이다.
때는 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부터 제사라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 넙죽 절하고 제수 음식을 맛보던 내가 귀여움을 받기에는 애매한 나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설날 차례를 지내려고 방에 들어가 있던 내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하고 OO이(유일한 '여자' 사촌동생)는 나가 있어라."
그 뒤로 지난 설날까지도 차례상 앞에 여자가 선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올 추석, 그 판도가 깨진 것이다. 말하자면 사연은 길다. 물꼬가 터진 것은 작년 추석쯤이었을 것이다. 가족회의에서 막내인 우리 아버지께서 "남자만 제사를 지내던 관습을 깨고 여자도 함께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올해 설부터는 그렇게 하자"고 입을 모았다는데, 설날 차 고장으로 지방에서 올라오시지 못한 우리 부모님이 없으니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예전 그대로 남자들끼리만 차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