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 딕 체니 미국 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이 얘기를 들으면서 "부시 행정부가 외교를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한숨은 필자만의 것은 아니다. 아마 당신들도 미국의 많은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전직 관료와 공화당의 의원들까지 양자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당신들은 녹음기 버튼을 누르는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당신들은 마치 북미 양자대화와 6자회담이 양립할 수 없는 대립물인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북미 직접대화는 6자회담의 대체재(substitutional goods)가 아니라 보완재(complementary goods)라는 것이다. 당신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 때 콜라와 함께 먹어야 맛이 있듯이,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양자회담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때에도 북한을 제외한 모든 6자회담 참가국들과 양자대화를 가져왔다. 만약 힐 차관보가 서울과 도쿄와 베이징에서 보낸 시간의 6분의 1만이라도, 아니 60분의 1만이라도 북한의 관리들과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 억제 통하지 않는다더니, 이젠 통해?
얼마 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핵보유국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고. 1만개의 핵무기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3만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었던 소련도 억제하는데 성공했던 미국이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족을 붙이고 싶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에 "북한과 같은 깡패국가들에게는 억제력이 통하지 않는다"며,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선언했었다. 그랬던 당신들이 MD가 본궤도에 오르고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되자, "북한에도 억제는 통한다"고 말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한다는 미국의 자화상치고는 좀 씁쓸하지 않은가?
어쨌든 북한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한 억제는 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1만개의 핵무기로도, 그렇게 자랑하는 MD로도 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의 반미, 아니 정확하게는 반부시 감정이다.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한 데에는 당신들에게 엄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한국 국민들은 순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무모하고도 위험한 선택을 한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에 분노를 표하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부시 행정부에게도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무모하고도 위험천만한 게임을 끝내는 길은 당신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 부시 행정부의 최고위 관료가 평양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최고위 관료가 평양에 간다면, 북한은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라 수만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핵실험을 할 것이다. 손에 손에 카드를 들고 말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당신네 특사에게 말할 것이다.
"이게 우리 공화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핵실험"이라고.
어떤가? 한 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올브라이트도, 클린턴도 마무리짓지 못한 일을 끝내고, 북한의 핵무장도 막으며, 한국인에게 진정한 친구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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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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