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고운 '한복'을 다룬 책

[서평] 배현주의 <설빔>

등록 2006.10.09 10:43수정 2006.10.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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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한가위를 맞아 처가를 찾았다. 어른들은 양복을 입거나 편안한 일상복 차림이었지만 아이들은 한복 차림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요즘 아이들은 부쩍 한복을 많이 입고 있는데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세상 흐름 덕인 듯 하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집이라면 1년에 한 두 번은 한복을 입혀야 하는 행사가 있는 것을 아실 터다.


이런 흐름을 뒷받침 해주는 것은 예전에 비해 값싸고 예쁜 아이들 한복을 사기 쉬워진 것이 있다. 모양은 좀 더 화려해졌지만 입히기는 단추 몇 개로 간단하게 해결되는 아이들 한복을 대형 마트에서 팔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싸고 화려한 한복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중국산 한복은 국산에 비해 마감이 거칠지만 가격이 반도 되지 않아 빠른 속도로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방송 보도에 따르면 이미 어린이용 한복 시장의 90% 정도를 중국산이 차지했다고 한다.

김치만 해도 식당이나 급식용은 대부분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한복이라 해도 원산지를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이 다를 터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산 한복들이 마감이 거칠고 전통적인 옷매무새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에 대해서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대표적인 것이 옷고름이다. 요즘 팔고 있는 어린이 한복은 대부분 옷고름은 이미 고정되어 있고 입고 벗는 것은 똑딱단추로 되어 있다. 사실 옷고름은 어른들도 버거워하는 부분이라 어른들을 위해 개량된 한복들은 대부분 옷고름부터 없애고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이어받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전통을 수정하더라도 편하게 널리 퍼지는 쪽이 나은가 하는 것 역시 각각 기호가 있고 찬반이 있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개량된 것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것이 사라져 버리는데 있다.


공이 많이 들어간 책 <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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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설빔>(배현주·사계절출판사)은 설을 맞아 곱디고운 설빔을 차려 입는 어여쁜 여자 아이 이야기다. 단아하고 정감 있는 그림책을 읽어 나가노라면 어른들도 잘 모를 우리 옷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우리 옷을 입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나가고 있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좀 더 예스런 방법으로 입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설빔>은 공이 많이 들어간 책이다. 요즘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 옛 민화나 오방색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빔>은 우리 옛 그림체와 색감을 현대 감각으로 살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이 된다. 내용에 대한 꼼꼼한 고증 역시 밀도를 높여 준다.

아이들 책은 재미도 중요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른들이 호감을 갖는 만큼 아이들이 직접적인 흥미를 느끼는 책은 아닌 듯 하다. 여자아이들은 그림이 예뻐 좋아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부모들이 우리 것을 전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찬찬히 읽어주고 무엇보다 한복을 직접 입는 것과 연결짓는다면 좋겠다.

우리 것을 익히고 한복을 입는 것은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까? 요즘은 뭘 해도 교육 효과가 중요한 세상이니 첨언을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유럽의 지성으로 불리는 기 소르망 선생의 말처럼 지역적 특색과 세계 정서를 함께 갖춘 '글로컬(Global+Local)'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외국 거래처를 상대할 때 부부동반 초대에 한복 차림으로 참석했다가 큰 도움을 얻었던 적이 있었다. 좀 패배적으로(?) 말하자면 어차피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세탁하기 어렵다면 그 특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 조기 유학을 보내려는 강남 엄마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 대신에 국악을 배우게 하는 유행도 좋은 예는 아니지만 전통의 실용성을 보여준다.

경영 서적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업무 천재가 된 토리오>에서 성공 비결로 꼽았던 '단계적 실행력'을 기억하실 것이다. <설빔>에서 차근차근 우리 옷을 입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우리 한복을 예스런 방식대로 입어 나가는 과정 역시 아이들에게 단계적 실행력을 키워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 역시도 옷고름이나 대님 앞에선 한없이 작아진다. 한복을 마지막으로 입어 본 것도 결혼할 때였을 게다. 아이들을 키운다 하지만 사실 그 길에서 어른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아이들에게 입히는 중국산 똑딱단추 한복이 불안하다면 부모 먼저 장롱 속에서 울고 있을 한복을 꺼내 곱게 차려 입는 것이 순서가 아닐지.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국어능력 인증시험(TOKL)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국어능력 인증시험(TOKL)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설빔 - 여자아이 고운 옷

배현주 지음,
사계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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