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에서 날아온 동화와 마법, 테로 사리넨

시댄스 개막작 페트류슈카 등 3작품 관객 매료

등록 2006.10.11 09:50수정 2006.10.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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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북유럽풍 동화 한 편을 보는 듯한 <페트르슈카>.

북유럽풍 동화 한 편을 보는 듯한 <페트르슈카>. ⓒ 김기


10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토월극장에서 16일간의 시댄스 2006 여정이 시작되었다. 발트해 연안 핀란드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북유럽 현대무용의 스타 테로 사리넨의 3작품이 그 첫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테로 사리넨의 3작품은 유사한 듯하면서도, 다른 안무가의 것으로 혼동할 만큼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3인의 남성 무용수가 거의 같은 동작을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동작에 빠져들게 만든 <떨림>.


이 작품은 마치 셰익스피어가 단어 수는 작아도 변화무쌍한 문장들을 남긴 것처럼, 춤의 동작들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동작의 문장, 그리고 주제적 이미지는 심오함을 던져주었다.

자폐적 혹은 유아적 상상과 동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리넨의 <떨림>은 몽환 분위기의 조명과 어우러져 차츰 관객에게 따뜻한 회상을 선사하였다. 사리넨의 다른 작품들도 분위기와 동작은 달라도 통상의 현대무용에서 받게 되는 무거운 주제의 압박은 느낄 수 없었고, 비교적 가볍고 편안한 동행의 이미지를 얻게 하였다.

a "춤은 내 인생이자 언어다"고 말하는 테로 사리넨. 유럽인치고는 작은 체구인 그는 순수하고 따뜻한 심성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춤은 내 인생이자 언어다"고 말하는 테로 사리넨. 유럽인치고는 작은 체구인 그는 순수하고 따뜻한 심성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 김기


공연에 앞서 오후 3시 30분경, 토월극장 로비에서 인터뷰를 한 사리넨은 “춤은 내 인생이자 언어다. 말보다는 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설명하는 게 편하다”고 하였다. 북유럽에서는 아이돌 스타쯤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사리넨은 “내 자신의 궁극적인 관심은 우정, 사랑, 외로움, 관계 등 인간 자체에 있다”고 말했듯이 그의 작품들에는 사람에 대한 아주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떨림> 다음으로 남녀 2인무 작품인 <미지로>가 이어졌다. 이 작품은 백색 플로어에 거의 모노톤으로 표현되는 조명 그리고 그림자의 조화 속에서 남녀 무용수의 동작이 이어져 갔다.

<떨림>이 반복의 기법이 인상적이었다면, <미지로>는 투영의 기법이 눈에 띄었다. 그림자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투영의 결과가 거의 왜곡되어 나타나게 된다. 백색의 플로어와 그 위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동작의 또 다른 이미지로써 그림자는 미지(未知)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a 시댄스 개막작으로 올려진 사리넨의 <미지로>

시댄스 개막작으로 올려진 사리넨의 <미지로> ⓒ 김기


관객들이 가장 좋아했고, 또 기대했던 작품은 다음에 무대에 오른 <페트르슈카>. 체구가 크고 작은 남성무용수와 깜찍한 여자 무용수가 등장한다. 원래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미하일 포킨의 안무로 1911년 발레로 발표되었던 것이나 거의 100년 만에 사리넨이 현대어법으로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원작의 인물 캐릭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단 두 대의 아코디언으로 줄였다. 스케이트 링크를 연상케 하는 무대는 캐릭터들의 의상들과 더불어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냈고, 남자가 사랑을 경쟁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많은 일화들이 때로 동화를 넘어 만화 같은 느낌까지 주었다.


작년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으로 핀란드 현대무용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사리넨의 춤은 같은 유럽이라 할 지라도 프랑스나 영국의 경향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핀란드의 특색을 보여 주었다. <페트르슈카>는 북유럽의 동화를 보듯 따뜻한 상상을 전달하였고, 사리넨의 마법같은 안무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현대무용이라는 단어에 공식처럼 얹어지는 광기 혹은 치열함 같은 느낌보다 사리넨의 안무는 서정과 자유로운 상상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a 페트르슈카 한 장면.

페트르슈카 한 장면. ⓒ 김기


a 두 명의 아코디언 연주자가 마법사 복장을 하고 무대 한 쪽에서 라이브 연주를 한 <페트르슈카>

두 명의 아코디언 연주자가 마법사 복장을 하고 무대 한 쪽에서 라이브 연주를 한 <페트르슈카>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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