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에 들어선 '-60℃ 레고랜드'

[해외리포트] 러시아 갑부가 먹여살리는 도시 아나디르

등록 2006.10.11 11:05수정 2006.10.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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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고정미

시베리아에서 가장 척박하고 황량한 지역을 꼽으라면 세계의 끝, 바로 러시아의 추코트카주일 것이다. 한겨울엔 섭씨 영하 44~60℃까지 내려가고 초속 40m의 매서운 강풍이 부는 불모지이다.

추코트카주는 러시아 극동의 알래스카 인근에 위치하며 크기가 70만㎢로 남한 면적의 7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고작 5만500명(2006년) 뿐이다. 나무도 자라지 않고 저녁에는 무지막지하게 큰 모기들이 칼가는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이 곳 주민들은 추코트카주의 날씨에 대해 이방인이 물어보면 이렇게 농담을 한다고 한다. "한 달은 나쁜 날씨이고, 두 달은 아주 나쁜 날씨이고, 아홉 달은 잔혹한 날씨"라고….

하나 더. 추코트카주의 수도 아나디르는 '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유인 즉, 이곳의 겨울 바람이 너무나 매섭고 강해 개들이 바람에 떠다닐 정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도시'

이러한 척박한 곳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작은 블럭들을 모아 조각조각 끼워 맞추며 자기만의 '랜드'를 짓는 아이들의 장난감 놀이처럼, 지금 이 버려진 땅을 러시아 최대의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39)가 신도시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


실제로 아나디르는 '아브라모비치의 레고랜드'라고 불려진다. 인구 1만명의 미니 도시인데다가 한 눈에 온 도시가 들어온다. 특히 레고 블럭같은 빨강·노랑·파랑색의 조립식 5층 건물들이 영구 동토지대에 들어서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프로축구단 '첼시'의 구단주이기도 한 아브라모비치는 얼마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갑부명단에서 재산 182억 달러로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그의 사치행위와 별난 행동은 세계 가십 언론의 표적이지만, 이곳 추코트카주에서만은 주지사로 그리고 구세주로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브라모비치의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a 아브라모비치가 새롭게 건설하고 있는 러시아의 최북단 도시 아나디르.

아브라모비치가 새롭게 건설하고 있는 러시아의 최북단 도시 아나디르. ⓒ www.chukotka.org

7년 전 러시아 의회인 국가두마 선거유세의 일환으로 추코트카주를 방문한 아브라모비치는 열악한 주민들의 삶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상점에 진열된 물품이라곤 몇 가지 살충제·식초·소금이 전부였다.

방문 후 아브라모비치는 4대의 대형선박을 빌려 각종 생필품 등을 실어보냈고, 20톤을 적재할 수 있는 Mi-26 대형 헬기를 임대하여 과일과 채소를 주민들에게 보내줬다.

그후 그는 자기 재산으로 아나디르에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대형상점은 물론 대형 병원·클리닉·식료품 공장 심지어 성당과 박물관까지도 지어주었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그는 추코트카주 적십자에 매년 1백만달러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 기금으로 적십자는 알콜 중독자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러시아 적십자 본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겨우 3700달러이다. 아브라모비치의 돈이 없으면 이 도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이 곳을 '러시아의 게토'라고 한다. 식물은 3개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난방을 위해 동물의 지방을 태우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동물의 사료를 먹는 때도 있다고 한다.

이 곳에는 1만 7천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내륙지방에 살며 순록 사냥과 방목을 하거나 해안가에 거주하며 고래·물개·고기 등을 잡는다. 주 당국은 이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재정지원이 없어 힘들기만 하다.

경제 5배 급성장... 러시아 전체 평균보다 3배의 임금

아브라모비치가 2001년 주지사로 선출된 이후 이곳의 경제는 5배나 급성장했다. 추코트카주의 평균임금은 러시아 평균임금인 8650루블(약 326달러)보다 무려 3배 가까운 2만2600루블(약 852달러)에 다다른다.

아브라모비치와 주당국은 추코트카주의 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순록·북극 여우·물개·연어·고래 잡이등의 전통산업을 쿼터제와 지원금 보조를 통해 보호하고 산업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공업화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

물개와 고래를 이용한 의약품 개발산업을 위해 해외 제약회사의 협력과 투자자들을 찾고 있으며, 특수한 자연환경을 이용한 생태계의 연구와 자원개발 그리고 여행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브라모비치의 '레고 랜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아브라모비치는 2003년 빚더미에 올라있던 첼시 구단을 인수한 뒤 막대한 돈을 퍼부어 2005년 시즌 50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일궈낸 황금손이다.

아나디르는 시베리아의 두바이가 될 것인가. 그의 손에는 182억 달러가 있다.

a 러시아의 최고갑부 아브라모비치와 그의 가족. 오른쪽이 그의 아내 이리나, 왼쪽은 그의 아들이다.

러시아의 최고갑부 아브라모비치와 그의 가족. 오른쪽이 그의 아내 이리나, 왼쪽은 그의 아들이다. ⓒ AP=연합뉴스


러시아의 갑부 아브라모비치는 15년만에 무일푼에서 182억 달러라는 유를 창조한 신화적 인물이다.

1966년 러시아 사라토프에서 출생한 그는 지난 92년부터 석유중개업무를 시작해 석유회사 지분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처세술에도 뛰어나 2003년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괘씸죄로 구속되자 러시아의 자산을 잇달아 매각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구단을 인수해 영국으로 자리를 옮긴다.

동고동락했던 옐친 시대의 올리가르흐(재벌)들은 대부분 푸틴과의 갈등으로 구속되었거나 망명했지만, 그는 푸틴의 정치적 화살을 피해 명실상히 러시아 최고의 부자에 올랐다.

그는 탑승인원이 360명이나 되는 매머드급 보잉 767기를 1억달러에 구입하거나 세계에서 6번째로 큰 108m짜리 호화 요트를 1700만달러에 사들여 절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등 사치와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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