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북한 평안북도 룡천에 보낼 대한 적십자사의 긴급 구호품을 실은 화물선이 인천항을 출항하는 모습.(자료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가 사실상 포용정책을 포기한 시점은 올해 7월이다.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징후가 포착되자, 시험 발사를 강행하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고, 북한이 시험 발사를 강행하자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는 포용정책의 기조와 사실상의 결별의 의미했다.
포용정책의 근간은 강력한 방위태세 유지를 한편으로 하면서, 대화와 접촉을 통해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제재와 봉쇄로는 공산주의 국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역사적 경험과 남북관계의 전개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얻은 교훈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노 정부는 대북지원, 그것도 인도적 지원 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음으로써 대북포용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저버렸다. 이는 노 정부 출범 이후 악화와 회복을 반복해왔던 남북한의 신뢰가 완전히 깨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모습은 1998년 8월 31일 북한의 광명성 1호(대포동 1호) 발사 때, 김대중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고 미국과 방위태세를 유지하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적 지원과 막 닻을 올린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속하는 한편,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와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일괄타결을 제안함으로써 미국 내의 대북 강경론을 협상론으로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만든 노무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북 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은 이뤄지면 좋겠으나 이미 늦은 듯하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남한의 쌀·비료 지원 중단으로 남북관계는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우선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꺼져가고 있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이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졌고, 북한 역시 "6자회담을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고 여러 차례 밝혔던 만큼,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 것은 극단적인 위기를 방지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관계를 잇는 마지막 보루하고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섣불리 중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이들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안팎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고, 정부도 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사업마저 중단하면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남한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이들 사업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까지는 어렵더라도 섣불리 중단하지 않겠다는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대담하고도 포괄적인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대단히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비록 맥락은 다르더라도 핵보유국이었던 남아공과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핵무기를 폐기한 사례들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큰 틀의 해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에게 북미직접대화 및 금융제재에 있어서 유연한 모습을 보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부시의 대북정책 비판론은 한국에게 원군이 될 수 있다.
정부를 포함해 한국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이 포용정책을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손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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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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