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6일 경기도 문산 변전소에서 북측에 위치한 개성공단에 송전을 시작했다. 이날 저녁 경기도 파주 최전방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전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아래). 위 사진은 지난 해 12월 개성공단 야경.연합뉴스 황광모
"포용정책의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명숙 국무총리의 10일 국회 답변이다. 한 총리는 11일 자신의 발언을 이렇게 약간 수정했다.
"대북 포용정책은 완전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떤 수위에서 이를 조정할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인식과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누가 햇볕정책의 실패를 말하나
이런 인식과 판단은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다.
햇볕정책은 대북3원칙으로 구성된다. 그 첫째가 '무력도발의 불용'이고, 둘째가 '흡수통일의 배제'이며, 셋째가 '화해와 협력의 적극 추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햇볕정책 혹은 대북포용정책을 세번째의 의미로만 받아들인다.
햇볕정책은 '안보'를 가장 우선시하되,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인도적 교류 등을 지속하면서 변화하는 북한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나 체제 변환이 목적이 아니다. 변화하는 체제, 즉 남한의 도움에 의해 '스스로 변화하는 북한'이 햇볕정책의 목적이다.
그 반대말은 당연히 봉쇄정책이다. '봉쇄'를 통해 고립시키고, '고립'을 통해 내부분열을 유도하며, '내부분열'을 통해 스스로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이 봉쇄정책이고 대북제재정책이다. 그런데 햇볕정책의 세번째 항목만을 가지고 대북봉쇄정책과 비교하며 그 전략적 가치를 따져보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언동이다.
변화하는 북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일관성·자발성·능동성이 핵심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은 가장 적극적인 대북 개입정책이고 가장 능동적인 대북참여정책이다. 이런 정책의 비전과 목적이 공유되고 실천될 때만이 북한과의 '상호주의'가 가능해진다.
햇볕받은 북한에는 자본주의 싹이 텄다
상호주의 원칙은 1:1의 등가성 상호주의가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장사꾼식 조치'도 아니다. 우리 측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해 북한도 일정한 수준의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7월 1일 단행된 '7·1 경제개선조치'이다. 배급제를 폐지했고, 시장을 열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배급제는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가격에 대한 결정권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시장에 위임하고, 개인이나 협동농장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혁명적인 조치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이나 농장이 물건을 팔아 이득을 내고, 그 이득을 재투자하고, 그 이득으로 나중에 받게 될 연금까지 내야 한다는 것이 '7·1 경제개선조치'의 내용이었다. 북한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햇볕정책이 갈망했던 진정한 의미의 상호주의이고, 압력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변화하는 북한체제의 참모습'이었다.
햇볕정책의 상호주의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개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가장 좁은 의미의 거래 개념으로 '100원 대 100원'으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런 오류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