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외무장관에 꾸지람 듣는 북한대사

[해외리포트] 때리는 미국보다 말리는 호주가 더 밉다

등록 2006.10.12 21:52수정 2006.10.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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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코멘트!" 호주 외무성에 불려갔다 나오는 천재홍 북한 대사가 묵묵부답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노 코멘트!" 호주 외무성에 불려갔다 나오는 천재홍 북한 대사가 묵묵부답으로 걸어나오고 있다.시드니모닝헤럴드
"북한 외교관을 추방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앞으로 호주에 입국할 수 없소.(There won't be any more visas given to North Korean to visit Australia)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정하여 외무장관인 내가 직접 허가하겠소."

지난 10일 오전,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이 천재홍 호주주재 북한대사를 집무실로 불러서 한 말이다. 천 대사는 지난 4일과 10일 외무부로 불려갔는데, 1주일에 두 번씩이나 외무부로 소환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위와 같은 조치는 북한의 핵실험 뉴스가 전해진 후,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호주가 보인 첫 반응이자 첫 번째 제재조치였다. 세계적으로도 첫 번째에 해당된다.

언뜻 강경하게 보이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호주가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사실과 비교하면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선 상징적인 조치였다. 지난 1년 동안 호주를 방문한 북한사람이 155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호주의 대 북한 외교 딜레마와 더불어 중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호주가 벌이는 줄타기 외교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호주의 대 북한 외교 딜레마들

호주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북한과 호주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총부리를 맞대고 싸운 적국이었지만, 호주는 1974년 서방국가로는 맨 처음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던 2000년에는 호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방국가들의 북한 식량지원을 이끌었다. 2004년에도 교착상태에 빠졌던 6자회담의 재개 돌파구를 호주가 마련해준 바 있다.

이 두 가지 일에 앞장 선 당사자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이었다. 그는 문제해결을 위해 2000년과 2004년 두 차례 북한을 직접 방문했다. 오죽하면 다우너 장관의 두 번째 북한방문을 앞두고 호주주재 북한대사관이 "그는 북한에서 최고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을까.


그런 다우너 장관이 외교관례상 거의 무례에 가까울 정도로 천재홍 북한대사에게 꾸지람(dressing-down)을 했다. 다음날 아침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다우너 장관에게 엄한 꾸지람을 들은 천 대사는 그를 둘러싼 기자들을 향해서 바보스럽게 엄지손을 치켜올리며(goofy thumbs-up) 공산국가 출신 특유의 오만함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천 대사가 곤욕을 치른 건 호주의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빈 러드 그림자내각 외무장관이 천 대사를 집무실로 불러놓고 소파도 아닌 책상의자에 앉아서 거의 질책에 가까운 항의를 한 것.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한 바 있는 러드 의원은 "굶주림에 지친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북한은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북한대사를 추방하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천재홍 북한 대사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천재홍 북한 대사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TWT
한편 지난 10월 4일 첫 번째로 외무성에 불려간 천재홍 대사는 데이빗 스펜서 차관 집무실 앞에서 5분여 동안 기다리는 수모를 당했다. 20여 명의 기자들에 둘러싸인 천 대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성대며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위와 같은 모습들을 TV뉴스를 통해서 지켜보는 한인동포들의 심사가 아주 불편하다.

이스트우드에 거주하는 김대곤(49)씨는 "한 나라의 대사를 1주일에 두 번씩이나 불러다 놓고 시쳇말로 '개망신'을 주는 장면을 보고 측은한 심정이 들었다, 물론 호주국민 77%가 북핵문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맹방 미국과 최대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하워드 호주 총리
하워드 호주 총리TWT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호주당국은 맹방인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호주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중국의 입장까지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존 하워드 총리가 10월 9일의 의회답변을 통해 "북한은 한 마디로 국제사회의 무법자(International Outlaw)다, UN이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 두고 보겠다, 유엔헌장 제7장에 근거한 안보리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요구한다, 특히 호주와 연대하고 있는 APEC과 아세안 국가들에게도 동참을 촉구한다"고 발언한 것도 미국이 바라는 바를 호주가 대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쪽을 아우르기 위해서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이 나섰다. 그는 천 대사에게 "중국은 북한이 받는 원조의 약 80%를 제공하고 있으며 외교적으로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게 굴욕감을 안겨준 것은 미국이나 호주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해서 중국을 배려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야당들도 한몫씩 거들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킴 비즐리 당수는 9일 의회발언을 통해 "노동당은 북한의 핵실험을 침략행위로 규정한다, 아울러 하워드 총리가 빠른 시일 안에 지역외무장관회의 소집을 주도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존 하워드 총리가 비즐리 당수의 제안을 즉석에서 받아들인 건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다만 호주녹색당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비판한다, 아울러 핵에너지를 구실로 우라늄 개발에 열심인 호주정부도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해 북한의 핵개발을 비난하면서 우라늄 수출에 진력하고 있는 호주의 2중성을 함께 비판했다

우라늄 매장량 세계 1위의 호주

세계 최대 우라늄 매장량을 갖고 있는 호주는 캐나다에 이어 제2의 우라늄 수출국인데 향후 전 세계 우라늄 수요의 3분의 1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호주를 방문해서 매년 2만 톤의 호주산 우라늄을 20년 동안 공급받는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호주는 NTP 가입을 거부하는 인도와의 우라늄 수출계약을 재고하고 있다.

호주산 우라늄의 최대 수입국인 일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폴 키팅 전 호주 총리는 10일 시드니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서 "북핵이 주변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핵무장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일본은 항상 주목해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제3당인 민주당 소속의 린 앨리슨 당수는 조금 색다른 견해를 피력해서 눈길을 모았다. 그녀는 "북한제재를 서두를 이유는 없다, UN이 신중하게 검토해서 처리하면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미국을 포함한 8개 핵보유국들에도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라고 권고해야 한다"면서 "전 세계에 2만7000개의 핵무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만 압박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한편 채널7의 인기프로그램인 <선 라이스>의 진행자 데이빗 코시는 세계 각국의 핵무기 보유 숫자를 반복적으로 알리면서 "북한은 막 시작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을 상기시키면서 "국제사회가 수평감각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시드니 시내의 마이어백화점에서는 김정일 티셔츠를 팔고있다.
시드니 시내의 마이어백화점에서는 김정일 티셔츠를 팔고있다.윤여문
북한 공사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 없어졌다"

핵실험 사태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북한과 호주는 특이한 외교관계 역사를 갖고 있다. 1974년, 아직 동서간의 긴장이 팽팽했던 시기에 호주는 미국과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로서는 맨 처음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트남에서 호주군인을 철수시키고 중국(당시 중공)과 교류를 시작한 바 있는 고프 휘틀람 노동당 정부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남짓 지난 1975년에 북한 외교관이 야반도주에 가까운 일방적인 철수를 단행했고 북한주재 호주외교관들도 추방해버렸다.

그러다가 25년 만인 2000년에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주가 북한의 식량지원과 6자회담 측면지원 등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대사급 외교관을 파견한 몇 안 되는 서방국가여서 북한으로서는 더 없이 좋은 해외창구다.

한편 대사는 자국을 대표하여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 외교를 맡아보는 공무원으로, 주재국에 대하여 자국의 의사를 전달하는 임무를 가지며 국가의 원수와 그 권위를 대표한다. 그런 전권특명대사가 호주의 여야정치인들로부터 무례에 가까운 홀대를 받은 사실은 자존심이 강한 호주주재 북한외교관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오후 전화로 연결된 북한대사관의 박명국 공사는 "핵실험은 조선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주는 자구책이다, 호주가 그걸 비판할 권리는 있지만 우리가 그걸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어서 "조선의 핵실험 성공으로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게 됐고,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천 대사가 호주언론에 언급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똑 같이 반복했다.

"우리는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강하게 받고 있다(We are under extreme threat of Unite State of nuclear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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