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사 기사가 삭제된 채 발매된 <시사저널> 870호.
둘째는 편집권의 귀속 문제다. 편집권은 편집국에 속하는가 아니면 경영진에 속하는가? 그러니까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은 편집국장이 하는가, 아니면 '사장'이나 '회장'이 하는가? 기사도 하나의 '상품' 노릇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보기보다 미묘한 문제다.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 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공직은 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스란히 포갤 수는 없겠지만, 언론사 경영자와 편집국장의 관계는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관계에도 비유할 수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어떤 구체적 사안을 뒤져라 또는 덮어라 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인식한다.
그것이 특히 이 정부 들어서 널리 선양된 검찰의 독립이다. 검찰총장 인사권을 대통령이 가지면서도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구체적 사안의 수사나 기소 여부를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편집국장 인사권을 경영자가 가지면서도 어떤 사안에 대한 기사가치 판단을 편집국에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사는 내다 파는 상품이지만, 내다 파는 상품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비록 사기업이 공급한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띠고 있다. 오로지 시장기구에만 맡겨놓기에는, 한 공동체의 총체적 위생을 위해 너무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기사라는 재화다. 그래서 나는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
<시사저널> 제호의 명예 지켜야
셋째는 사태의 처리 방식이다. 말하자면 기술적 수준의 문제다. 금창태 사장이 편집국장의 사표를 즉시 수리한 데 이어, 편집권 독립을 옹호하는 기자들을 과격하게 징계함으로써 갈등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은 이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판단한다.
금 사장은 이 기회에 기자들을 확실히 길들이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한 시절 '주인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시사저널>의 독립성과 생명력을 지켜왔던 기자들이 경영진의 서슬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또, 설령 기자들이 길들여진다 할지라도, 그렇게 길들여진 기자들이 만들어내는 <시사저널>은 도대체 어떤 꼬락서니일 것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경영진과 단체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 경영진의 소극적 태도로 단체협상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한다.